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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30. 2024

애꾸인 줄 몰랐다

중심


재미난 걸 발견했다. 아마 나만 재미나겠지만.

화장실 거울을 바짝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눈으로 눈을 이토록 깊고 세심하게 관찰해 본 적이 있던가 싶다.



본다는 건 아무래도 두 가지 같다.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마로(네이마루)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건 평상시처럼, 또는 눈에 약간의 힘이 가해진, 집중, 포착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들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클 것이다.


이마로(네이마르) 보는 것은 멍 때리는 상태와 비슷하다.

그러려면 얼굴에 긴장 하나 없어야 한다.

그러면 눈은 뜨여 있지만 의식은 미지의 영역으로 향한다.

아마 잘 때의 눈의 상태.

꿈을 꿀 때의 눈의 환경.

가벼움.


눈으로 보면 동공은 짙고 축소된다.

이마로 보면 동공은 옅고 확장된다.

한편으로 동공은 우주의 거시공동처럼도 느껴진다.

기능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void를 가능한 넓게 유지해야 한다.


화장실에서 나와 두유가 담긴 물컵을 바라본다.

한 번은 의식해서 보고, 한 번은 주의를 빼고 본다.

별반 차이가 없다.

눈빛도 별반 차이가 없다.

만사가 힘을 줘봤자라는 얘기다.

눈에 힘을 주면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오래 집중할 수도 없다.

힘을 빼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빼도 다 보이는 데다 빼면 볼 수 없는 것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는 방법은 그래서 두 가지인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눈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맨눈으로 보이는 대로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은 이마로 보는 법을 알기 때문에 언제든 이마를 떠서 볼 수 있으며, 이마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중요하지 않아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세상은 신기하고 예쁘지 않은 게 없다.



약간의 장애를 발견했다.

이마로 볼 때 왼눈에 '외사위'라는 증상이 일어난다.

실은 유년시절 무렵부터 알고는 있었다.

어느 안경사가 말해줬던 것 같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애기 때 매직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을까...


외사위도 외사위인데 그보다는 내 왼쪽 눈이 일을 대충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게 괘씸하다.

왼눈을 가려도 시야만 좁아질 뿐 포커스가 똑같다.

없어도 된다는 얘기다.

그동안 왼눈이 놀고 있었다니.

오른눈에 기대고 있었다니.

이렇게 약해빠져 있었다니.

이게 최선이라 말하고 있었다니.

때문에 우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제길... 쭉 알고는 있었다.

왼쪽 눈이 더 작고 시력도 좀 더 나쁘고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왼쪽 오른쪽 채도와 명도가 다르다는 것 또한.

그래서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볼 수 있는 행운아라는 사실 또한.


약간의 문제라면 오른눈을 가리면 왼눈이 갈 곳을 잃는다.

어떤 거리의 무엇에도 시선이 안정적으로 고정이가 안 된다.

그대로 일어나 걸으면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

신기하다 오옭웱...


딱 걸린 김에 왼쪽 눈 너는 특훈을 좀 해야겠구나.

이렇게.



마땅한 가리개가 없어서 급한 대로 박스테이프로 오른눈을 봉인했다.


'왼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 에너지야 왼쪽으로...'


아... 순 엉터리였어... 그래서 그동안 오른쪽들이 죄다 고생했구나...

턱도, 어깨도, 팔도, 허리도, 골반도, 무릎도, 발도, 모두 오른쪽...

어느덧 모두가 우짝으로 치우쳐져 있었구나... 틀어져 있었구나...

주되게 오른손을 많이 써왔으니까 뭐...


회복 이전에 중심부터, 분배부터 잘해봐야겠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회복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상 무엇이든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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