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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한다는 건, 꾸준함의 힘에 관하여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를 읽고서

by 꽃비내린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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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만드는 것도 한 사람의 '나', 옷을 입는 것도 한 사람의 '나'. 나라는 자아가 옷을 만들고 나라는 자아가 옷을 입는다. 따지고 보면 패션은 '나'다. 옷과 한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공간. 그렇게 '미나(minä)'가 탄생했다.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신념에는 그의 어린 시절과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일들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로 이뤄져 있다. 이전에 읽었던 조수용 작가의 '일의 감각'과 같이, 일본 패션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설립자, 미나가와 아키라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아키라가 일을 선택하는 방식은 현대 사회의 기준에서 다소 역행하는 듯하다. 우리는 자신의 강점을 알고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아키라는 오히려 못하는 일이라서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육상에 재능이 없어도 꾸준히 달렸다. 매일 달리기로 조금씩 기록이 좋아지는 경험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못하는 분야도 기초부터 꾸준히 해오면 능숙해지리라 확신하였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일의 잘함과 못함에 쉽게 일희일비해왔던 것 같다. 치기 어린 나이엔 남들보다 잘하는 영역이 있으면 속으로 우쭐해했으며, 잘 못하는 일엔 울화가 나고 결국엔 포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최근에 통기타 연주를 배우고 있다. 익숙하고 능숙한 업무만 늘 하다 낯설고 모르는 것을 배우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울컥하는 감정이 다시금 올라온다. 잘하고 싶으니까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날이 올 테니까 손에 놓지 않는다.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해야 했던 일들이 있었다. 잘 모르는 분야여서 덜컥 겁이 났지만 관련된 글도 읽고,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 조언을 들으면서 시행착오를 몇 번 해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그 일은 못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낯선 일이었다. 아키라는 바느질을 잘하지 못했지만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바느질을 한 것이다. 그는 원단을 자르는 일부터 인체에 맞춰 재단하는 일들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디자인을 하기 위한 기본기를 갖춰왔다.

다른 이들의 성공과 성취를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오늘날, 경쟁자의 기록과 비교하는 대신 지난날의 쌓아온 기록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는 아키라의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100년이 지나도 살아남는 브랜드라면

유행의 시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듯하다. 일부 군중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다 바람에 촛불이 꺼지듯 금방 사그라드는 일들도 많다. 미나 페르호넨은 처음부터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지향했다. 미나 페르호넨은 도쿄 전시회에서 출시된 연도와 무관하게 디자인한 옷을 배치해 전시하였는데, 관람객들은 어떤 디자인이 오래되었는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미나 직영점에선 오래전 구매한 옷도 기꺼이 수선한다.

많은 패션 브랜드는 원가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 생산을 맡긴다면, 미나는 일본 내 여러 원단 공장과 협력한다. 물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원단 생산자와 긴밀한 협업으로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이 100년 이상 남은 브랜드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모두가 브랜드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젠가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사업을 하게 된다면 어떤 SNS에서 어떤 콘텐츠로 팬을 모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를 들어내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 신념과 철학에 대해 알리고 그 가치를 함께 공감해 주면 좋겠다. 아키라는 당시 코코 샤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처럼 본인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세우던 시기에 '미나'라는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선택했다. 그는 미나가 자신에게 종속되기보다 브랜드 그 자체로 기억되길 바랐다. 그가 없더라도 미나 페르호넨의 본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나 또한 아키라의 관점과 같다. 100년 이상 유지되지 않더라도 나의 일면 보다 브랜드에 담긴 가치로 공감을 받았으면 한다.


이 책은 미나가와 아키라가 10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그래서 챕터 중간중간에 이전 챕터에 언급된 내용이 다시 언급되기도 하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점들이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속함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는 듯하다. 그의 삶은 꾸준함으로 무명의 긴 시간을 버텼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사업을 확장해 왔다. 그의 삶은 현대 사회의 기준에선 무모하고 비효율적이게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100년 이상의 먼 미래에 그런 무모함에 반하고 미나라는 브랜드를 사랑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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