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혼자서 뭐든지 해내려고 애썼다. 초등학교 2학년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어머니가 집에 나가신 지 오래 지난 시점, 아버지는 우리를 거실에 모인 후 아버지를 따라갈지 아니면 어머니한테 갈지 결정하라고 통보했다.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에 움츠린 언니와 오빠가 먼저 아버지와 함께 있겠다고 말했다. 어린 나는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보다 직장에 다니시는 아버지 곁에 있는 편이 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족이란 안전한 경계선은 무너졌고, 나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선 불안정한 상황에 내던져졌다. 조금이라도 안정된 곳을 붙들고 싶었다. 얄팍한 이기심에 어머니를 버리고 아버지를 택했다는 죄책감을 가졌었다. 그때는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이혼이니 재판이니, 갑자기 낯선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사실 조차도.
나는 훗날 아버지와 크게 언쟁을 벌이면서 아버지가 이혼 과정에서 기록한 문서들을 쭉 보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버지가 밖을 나가신 뒤 나는 파일을 펼쳤다. 재판 과정에 작성한 서류들, 증거사진들 등등 하나씩 읽으면서, 떠듬떠듬 기억나는 파편들이 연결되었다. 그때서야 부모님이 왜 이혼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아버지가 어머니를 집 안에 들이지 말라며 싫어하셨는지도. 부모님은 단지 서로가 맞지 않았던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고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야 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겪어야 했던 사건들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히 얘기해줬다면 그 불안했던 상황을 괴로워하며 견뎌내지 않아도 됐지 않았을까.
공고해진 관계라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부터 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려 했다.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나에게 짐이였다. 도움을 받을 때마다 그만큼을 돌려줘야 하는 부담이 커서, 애초에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일이면 혼자서 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도 나는 '괜찮다'며,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켰다.
지난날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다른 사람한테도 의존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었다. 이제까지 잘해왔는데 굳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사회에 나오고 난 뒤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혼자서 결정하고 일을 구하다 보니 진로를 못 찾고 헤매는 방황하는 시기가 길었다. 올해 들어서 이 기나긴 방황을 끝냈다. 그리고 혼자서 다 하려는 고집도 내려놓았다. 내가 아무리 잘하려 해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Love Myself: 나를 사랑하기 위한 작은 실천법' 모임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내가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 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제는 웹기획 실무교육에서 만난 강사분과 저녁을 먹었다. 교육 마지막 날 이직 관련해서 언제든 상담해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기회라 생각했고 당일날 바로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나는 그날 진로 관련한 얘기뿐만 아니라 팀장으로서 내가 어떤 팀원인지, 어떤 점에서 우려되고 어떻게 보완했으면 좋겠는지에 관한 귀중한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만약 이전처럼 다른 사람이 기꺼이 내준 도움의 손길을 뿌리쳤다면 회사에 들어가서도 꽤나 오랜 시간 방황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혼자서 뭐든 해내려 애쓰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고고하게 살려고 절벽의 가장 끝트머리에서 위태롭게 서 있던 나에게 "이제 내려와도 된다고, 혼자서 해내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