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 모습을 가지게 한 그 씨앗이 언제, 어떻게 뿌려졌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씨앗을 바꿔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는 반박할 수 없는 법칙이 하나 있다. 우리는 각각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중
2017년 12월 23일.
내가 또렷이 기억나는 날짜를 꼽으라면 이 시기를 얘기하고 싶다. 이 날은 지방에서 살다 처음으로 서울에 정착한 날이었다. 나는 그날 입었던 흰색의 롱패딩과 붉은색 목도리 그리고 급하게 준비한 캐리어와 그 위에 올려진 담요를 기억한다. 막 학기 시험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졸업 전 취업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기쁨도 잠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면서 이전엔 느끼지 못한 외로움이 크게 다가왔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 같이 교육을 듣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무래도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라 거리감을 좁히기 어려웠다. 하필이면 이틀 뒤가 크리스마스 연휴였다. 본래 서울이나 경기도에 살던 분들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한 푼이라도 돈을 아껴야 해서 내려갈 수 없었다.
17년의 겨울은 굉장히 추웠다. 혼자 낯선 곳에 살아서 더 춥게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당일 사람이 그리워 코엑스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전시회를 보러 갔다. 그것도 잠시 뿐 외로움을 달래기엔 부족했다. 사람이 외로워지면 글이라도 읽게 된다. 나는 이야기에 목말랐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들로 갈증을 채웠다. 어느날 우연히 오바마의 자전적 일화를 보게 됐다.
그 일화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오바마가 어린 시절 매일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흑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해왔다고 적혀 있었다. 그 글에 감명을 받아 내 이야기도 글로 남기고 싶어 졌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거의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던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 나이대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왔을 텐데 그 시간만 뭉텅이 채로 떼어낸 것만 같았다.
대학 시절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에 떨었다. 분명 그 사이에도 좋은 날도 있었을 테지만 막상 끄집어내려고 할 때면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다. 이제라도 글을 남긴다면 10년 후 내가 그 글을 읽었을 때 23살의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첫 글은 '오바마의 일기' 일화를 시작으로 앞으로 내가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을 담았다.
내 얘기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건 작년부터였지만, '나만의 글'을 쓰고 싶은 열망만큼은 2017년 말, 그 날의 기억에서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