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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네이버의 10년 뒤 미래는 어떠할까?

프롤로그: AI 시대, 생존과 소멸 사이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비가 내리던 저녁, 늘 켜던 카카오톡을 열었다. 화면은 변함없었지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유튜브가 카카오톡을 제치고 월간활성사용자수(MAU)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MAU 기준 1위는 카카오톡이다. 다만 '사용 시간(timespent)'에서는 유튜브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이미 2018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미래였다.


한국은 오랫동안 ‘갈라파고스 시장’이라 불렸다. 외국계 테크 기업이 넘지 못한 장벽이 있었고, 그 장벽은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두 개의 거대한 나무가 뿌리내린 숲이었다. 그러나 2024년, 그 숲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플랫폼 소비의 중심이 카카오톡과 네이버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틱톡으로 옮겨가고 있다. 거대한 조류가 밀려오는 순간, 뿌리 깊은 나무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콘텐츠 시장은 이미 다른 질서 아래 움직이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세 개의 이름이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 네이버 TV는 존재감을 잃었고, 카카오TV는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서 밀려났다. 2023년 트위치가 한국 시장을 철수한 뒤, 네이버는 '치치직'이라는 새로운 깃발을 세웠지만, 소비자들은 이미 다른 대륙의 언어로 노래하고 있었다. 한때 우리의 눈과 귀를 채웠던 국산 플랫폼들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음악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멜론은 한때 국내 MAU 1,000만을 넘기며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2024년 1분기, 유튜브 뮤직은 MAU 약 900만을 기록하며 멜론을 추월했다. 음악은 더 이상 우리만의 언어가 아니었다. 소비자들은 글로벌 플랫폼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떠나가고 있었다.


웹툰만은 마지막 전선처럼 남아 있었다. 네이버웹툰은 북미와 일본에서 자체 IP 전략으로 선전하고 있었고, 카카오웹툰은 픽코마를 통해 일본 시장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슈에이샤, 라쿠텐, 아마존 재팬 같은 거인들이 디지털 만화 시장에 뛰어들며 판세를 흔들고 있다. 아직은 조용하지만, 이 바람도 언젠가는 우리를 향할 것이다. 나뭇잎은 먼저 흔들리고, 가지가 꺾이는 건 그 다음이다.


커머스 시장의 균열은 더 노골적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무료 배송과 초저가 정책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테무는 2023년 10월 공식 론칭 이후 월 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2024년 1월, 알리와 테무의 합산 MAU는 1,000만을 넘어섰다. 우리가 구축한 커머스 생태계 위로, 다른 문명의 상인들이 대지를 디디고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알리와 테무가 네이버쇼핑, 카카오커머스에 광고를 집행하며 매출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소비자 데이터를 장악하고 물류망을 구축하면서 우리 시장의 심장을 조용히 점령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의 광고는, 내일의 시장을 담보로 잡히는 일인지 모른다.


금융 서비스는 아직 국가 규제의 보호 아래 있다. 그러나 카카오페이는 중국 앤트그룹이 지분 2대 주주(43.9%)로 자리 잡고 있으며, 토스페이먼츠 또한 앤트그룹이 2대 주주다. 우리의 지갑 깊숙한 곳에 이미 외국계 자본의 손길이 닿아 있다. 통화는 바뀌지 않았지만, 통제권은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애플페이의 등장은 더욱 조용하지만 치명적이다. 2023년 초 현대카드와 독점 제휴로 국내에 진입한 애플페이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아이폰 점유율은 2019년 18%에서 2024년 25%를 넘어섰다. 결제, 커머스, 생태계. 눈에 보이지 않는 애플의 울타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AI 시대는 이 모든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는 네이버가, 모바일 시대에는 카카오가 우리의 디지털 삶을 이끌었다. 그러나 AI는 질서를 바꿀 것이다. 검색, 커뮤니케이션, 커머스, 콘텐츠 등 모든 것이 재구성될 것이다. 오픈 AI, 구글, 앤쓰로픽은 한국어 LLM 경쟁에서도 이미 우위를 점했고, 클라우드 AI 인프라에서도 국내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은 경계를 모르고 확장하고 있다.


2024년, 카카오와 네이버는 대대적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카카오는 공동체 체제를 강화하고, 네이버는 CIC를 해체하며 AI와 글로벌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효율성 제고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존재의 구조조정이다. 미래를 쥘 손을 다시 묶는 일이다.


앞으로 양사는 국내 규제와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면서도,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와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네이버는 라인-야후 합작사에서 일본 규제 당국의 견제를 받고 있고, 카카오는 글로벌 진출의 성과가 미미한 상태에서 국내 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잃어버린 땅 위에 다시 깃발을 꽂아야 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유럽처럼 미국계 테크 기업에 안방을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손으로 우리의 생태계를 지킬 것인가. GDPR, DMA, CCPA 같은 프레임 없이, 한국 테크는 바람 속의 촛불처럼 위태롭다.


EU는 싸웠고, 미국도 싸웠다. 중국은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규제=악’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기업의 변명이 아니다. 존재를 지키려는 마지막 저항일지 모른다.


국내 시장이 작다고 쉽게 해외를 외칠 때, 우리는 잊는다. 모래 위에 지은 성은 파도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국내 생태계를 지키지 못하면, 글로벌에서도 우리는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한 수성이 아니라, 적극적 방어와 기민한 생태계 확장이 필요하다.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다음 세대 문명을 구축하는 심장으로 삼아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과거의 찬란함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기술, 사람, 시장의 경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용기만이 우리를 살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갈라진 길목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기술의 시대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우리는 데이터의 바다 위에서 어떤 이름을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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