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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로스팅 Dec 16. 2024

루브르와 만화의 만남

제9의 예술로의 여정

2009년, 루브르 박물관의 술리 윙 메자닌에서 "The Louvre Invites the Comics"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는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의 출판사 Futuropolis가 협력하여 기획한 프로젝트로, 전통 예술과 만화라는 현대적 매체의 융합을 시도한 혁신적인 행사였습니다. 선정된 만화 작가들은 루브르 박물관의 모든 공간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한을 부여받아, 각자의 시각과 해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습니다. 전시회는 2009년 1월 22일부터 4월 13일까지 진행되었으며, 2010년에도 다시 열려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다른 스타일과 주제로 루브르를 재해석했습니다. 니콜라 드 크레시의 《빙하기(Période glaciaire)》는 먼 미래의 루브르를 배경으로, 빙하기 이후 인류의 흔적을 찾는 탐험대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습니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의 《루브르의 지하실(Les Sous-sols du Révolu)》은 루브르의 방대한 수장고를 탐험하는 인물을 통해 예술의 무한한 세계를 탐구하는 서사를 선보였습니다.


에릭 리베르주의 《홀수 시간(Aux heures impaires)》은 밤마다 깨어나는 루브르의 예술 작품들과 경비원 간의 교감을 그려내며 루브르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루브르 위의 하늘(Le Ciel au-dessus du Louvre)》은 디지털 비디오를 통해 혁명 시기의 루브르를 재현하며 예술과 역사의 접점을 탐구했습니다. 히로히코 아라키의 《루브르의 로한(Rohan au Louvre)》은 일본 만화 특유의 생동감과 강렬함을 통해 루브르를 독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만화가 단순히 대중적인 오락거리라는 인식을 넘어서, 깊이 있는 예술적 메시지와 사회적 통찰을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 파브리스 두아르는 "이번 전시는 만화가 단순히 가볍고 오락적인 매체가 아니라, 현대 예술의 중요한 표현 방식임을 증명한 사례"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루브르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닌, 예술과 창의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재확인시켰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만화의 만남은 예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전통 예술과 현대적 매체의 융합을 통해 새롭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앞으로도 루브르와 같은 전통적인 예술 공간이 현대적 예술 매체와 협력하며 창의적인 도전을 이어갈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이는 만화가 제9의 예술로 온전히 인정받았음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니콜라 드 크레시의《빙하기》(2005), 출처: 아마존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루브르 위의 하늘》(2009), 출처: 아마존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The Louvre Invites the Comics" 전시회는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개막 첫 주 동안 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으며, 입장을 위해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후 10시까지 연장 운영되었지만,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관람객은 "루브르의 명화들과 만화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신선하고 흥미롭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 전시회의 성공은 만화와 전통 미술의 융합이 대중에게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영향력은 루브르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2016년 7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열린 "Louvre No. 9: The Ninth Art, Comic Books" 전시회는 이후 오사카, 후쿠오카, 나고야 등 일본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이 전시회에서는 16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특히 히로히코 아라키의 《루브르의 로한》(Rohan au Louvre)이 대형 디스플레이로 전시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일본에서의 성공은 이 프로젝트가 문화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2022년에는 벨기에 브뤼셀의 만화 예술 박물관에서 "Comics at the Louvre"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에서는 20명의 작가들이 제작한 루브르 관련 만화 작품들이 소개되었습니다. 큐레이터 멜라니 앙드리외는 "이 전시회를 통해 루브르라는 문화적 아이콘이 어떻게 다양한 만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브뤼셀에서의 전시는 이 프로젝트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전시회들은 만화와 전통 미술의 융합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히로히코 아라키의《루브르의 로한》(2010), 출처: 아마존


벨기에 브뤼셀의 만화 예술 박물관, "Comics at the Louvre" 회고전 (2022)

출처: Comics Art Mesuem Brussel



프랑스에서 만화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제9의 예술(le neuvième art)'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진행된 "The Louvre Invites the Comics"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작품들이 탄생했으며, 특히 루브르의 역사적 유산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작품은 작가들의 독창성과 예술적 비전을 보여주며, 프랑스에서 만화가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분명히 증명합니다.


프랑스에서 만화가 '제9의 예술(le neuvième art)'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중반, 예술의 범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 문화부 산하 국립도서센터(Centre national du livre)의 분류에 따르면,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 무용, 영화, 사진과 함께 만화도 '제9의 예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71년, 프랑스 만화 비평가 프랑시스 라카생(Francis Lacassin)은 "만화를 위하여(Pour un neuvième art: la bande dessinée)"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제안했습니다. 이 개념은 곧 널리 받아들여졌고, 특히 프랑스-벨기에 만화 장르인 방드 데시네(Bande Dessinée)의 발전과《탕탕의 모험》과《아스테릭스》같은 작품들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만화의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프랑스의 만화 시장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만화 산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신문 '르 푸앵(Le Point)'과의 인터뷰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 파브리스 두아르(Fabrice Douar)는 "만화는 단순히 가벼운 것이 아니며, 루브르 역시 먼지 쌓이고 지루한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만화와 전통 예술 사이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루브르와 만화의 만남은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림과 글이 결합해 이야기를 전하는 만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 형식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만화가 문학, 영화, 미술과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되며, 학교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만화가들이 더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룰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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