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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낭만 사수하기

50세 은퇴 계획

by 김아울


우리는 회사생활 도합 20년, 각자 10년을 내리 회사원으로 달렸다. 남편은 회사생활에 분명한 계획이 있다. 50에 은퇴해서 평소 좋아하는 빵가게를 차리고 소소하게 사는 것. 그리고 금융자산을 주 수입원으로 삼겠다고 했다.

난 먼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벌써 걱정이다. 그의 은퇴를 무작정 반대할 이유도 없다. 처음엔 파이어족 꿈꾸는 여타 젊은이들의 넋두리인 줄 알았는데 계속 말하는 거 보니 진짜다. 걱정인형이 발동되고야 말았다.


'50세 은퇴해도 되는데, 그때 가서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괜히 걱정된다'


'아울에게 자산관리에 대해서 상세히 말해주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그때 가서 상황이 달라지면 회사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어. 무작정 은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살짝 유연해진 답변이었다. 그렇다고 편해지지 않았다. 남편의 표정이 계속 울상이거든.


'은퇴 이야기하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 삶의 낙인데..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내에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그걸 들으면 내 기분이 안 좋아. 오빠의 계획은 나름 정리되어 있나 본데, 나한테 설명해 준 적 없어. 그 계획 말고도 우리에게 닥치게 될 많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되지 않은 계획이잖아.'


'그런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때 가서 대처할 거야. 우리가 너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에만 목적을 둔다면, 지금 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것들을 다 그만해야 해. 심지어 5년 후에도 전원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에 가는 게 맞겠지'


극단적인 말 싫어하면서 매번 이럴 때는 자기가 극단적으로 말한다. 아무튼 어떤 의미 있지는 알 것 같았다. 남편은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꿈을 꾸고, 그걸 원동력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그에 반해 나는 5년 계획도 너무 길고. 거의 일주일 단위로만 생각한다. 너무 근시안적이라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감도 오는데 곧 죽음과 연관시켜 보면 단순해진다. 나는 50세 은퇴? 좀 걱정인데? 하고 끙끙대지만, 남편은 50대 은퇴가 얼마나 실현 가능한 건지 따져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아차 싶은 건 마지막 중얼거림이었다.


'낭만이 없어지는 것 같아'


우리가 사랑할 때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거라고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상대에 따라 다르다. 이렇게 사랑할 바엔 다 그만두고 싶은 상대가 있다. 내 모습이 스스로도 사랑스러우면 좋은 사랑이다. 나에게 남편이 그랬다. 남편을 사랑하는 내 모습이 좋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다시 재생되고 있는 것 같다.


남편도 나와 함께 그랬나 보다. 그의 언어에서 '낭만'이 나오는 건 처음 들었다. 진짜 은퇴를 하건 말건 우리는 어떻게든 잘 살 거다. 걱정 많은 내가 정년까지 다니라고 한다. 못할 것도 없지. 그동안 남편의 월급에 내가 많이 의지했구나 싶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다시 현실감각이 솟구치는 것 같다. 여러모로 낭만이란 놈은 꼭 사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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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울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회사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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