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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Jul 18. 2023

테헤란로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언제까지 이 길을 걸어야 할까

복직하고 석 달이 흘렀다. 업무량과 속도가 동시에 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 열심히, 성실히 사는 대신 송이와 보내는 시간은 줄고 있다.


회사는 테헤란로에 있다. 걸을 때마다 ‘나’의 존재가 옅어지는 느낌을 주는 묘한 길이다. 그 길을 걸으며 가본 적 없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 대신 그나마 몇 번 놀러 간 뉴욕을 떠올린다. 맨해튼의 파크 애비뉴와 닮았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공통점이 있다면 고층 빌딩이 양 옆에 있고, 양방향 통행로 가운데 나무들이 서 있는 정도랄까. 출근길 러시아워에 그 길을 일렬로 걷는 직장인과 나무 중 누가 더 애처로운지 헷갈리곤 한다.


테헤란로는 개인적으로 애증의 대상이다. 그동안 광화문, 한남, 성수 일대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이토록 정이 붙지 않는 동네는 없었다. 대신 이곳에서 일할 때의 소득이 가장 높다. 그래서 통장 잔고를 종종 보게 된다.


1년의 육아 휴직은 그 자체로 값진 경험이었다. 그 사실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공백은 마이너스 통장에 찍힌 숫자로 남았다. 이제는 부채를 착착 줄여나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마이너스 숫자는 착착 줄기는커녕, 야금야금 줄고 있다. 송이의 하원 후 돌봄 선생님 비용, 재택근무를 위해 마련한 작업실 비용 등 고정지출이 늘었다.


최근에는 아내와 유치한 대화도 나눴다. “여보, 나 이번 달에 얼마 벌었는지 알아?” “얼마 벌었는데?” “이만큼.” “열심히 살았네. 수고했어.” 운 좋게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걸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숫자에 집착하게 됐을까.


얼마 전에는 뉴욕의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뉴욕 시각으로는 밤 11시, 나는 점심시간 중이었다. 평소 전화를 전혀 안 하시던 분이라 무슨 일이 있나 했다.

* 엄밀히 적자면, 오촌뻘 되는 작은 아버지. 평소 ‘uncle’로 부르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편의상 ‘삼촌’으로 적었다.


“현아, 잘 지내고 있어?” 삼촌은 복직 후 안부와 근황을 물었다. 그는 2년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가볍게 안부를 물으려는 의도였을 텐데 이걸 또 진지하게 받아버렸다. “그러게요, 제가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휴직 동안 가득 쓴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기 위해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쪽으로 내 시간과 연료를 소진 중이라고 답했다. 아내가 사업을 하니 당분간 근로소득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전했다.


참고로 삼촌은 내 인생의 롤모델이다. 미국 이민 1.5세대로서 투자은행에서 30여 년간 일하며 자수성가했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부자다. 동시에 세 딸의 아버지이자 숙모의 든든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소셜미디어를 전혀 하지 않지만, 내 인스타그램을 종종 보신다….


제아무리 부자이고 현명한 삼촌이라 해도 내 인생의 정답을 갖고 있진 않겠지만, 25분의 통화 동안 그의 몇 가지 조언은 도움이 됐다. 요약하자면 내가 정말 원하는 삶과 급여생활자로서의 삶, 그 차이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는 것. 덕분에 내가 놓치고 있던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복직 후 삶에 치여 나의 글쓰기를 멈추고 있기도 했다. 내 글을 유독 더 좋아하고 기다리고 있는 분의 말이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40대 때는 일시적으로 행복감이 낮아진대요. 부양가족이 있고 일도 해야 하니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건 후순위로 뒤처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50대가 되면 상황이 나아지더군요.” 복직 후 오랜만에 만난 A가 말했다. A의 나이는 오십 초반, 그의 자녀 둘은 곧 성인이 된다. 그도 금융권에서 꽤 오래 일하다가 독립했다. 지난해부터 예상치 못하게 정부와 일하고 있는데 새로운 도전과 자극 때문인지 그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 “그동안 모은 자산이 꽤 있을 텐데 은퇴 계획은 없나요?” “일은 나이 들어서도 계속해야죠. 제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의 10년을 잘 보내면, 나중에 A처럼 근사하게 말할 수 있을까?


샤부샤부 국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주 앉은 B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우리, 운 나쁘면 130~140살까지 살 수도 있어요. 적어도 40년은 더 일해야 하지 않겠어요?” 10년도 아니고 40년이라니. B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매일 매출과 영업이익, 재고 등 숫자 보는 일을 관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한동안 백수로 지냈다. 그는 나와 비슷한 40대지만, 싱글이고 자녀도 없다. “그 패턴으로 일하는 건 저에게 지속가능하지 않겠더라고요. 현 님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가지고 있던 현금만 태우며 온전히 쉬다 보니 제가 오래도록 해보고 싶은 일이 떠오르더군요. 그거, 이제 해보려고요.” 그는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가을쯤 공개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며칠 전 B의 이야기가 폴인에 실렸다.)


“아빠 일하러 가?” 요즘도 송이는 아침마다 내게 묻는다. 내 대답은 똑같다. “응, 회사 다녀올게.”


일이란 뭘까. 고등학생 시절 배우던 물리 과목에서는, 물체에 힘이 작용하여 물체가 그 힘의 방향으로 이동할 때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힘(N)과 거리(m)의 곱으로 일의 양을 계산하고, 에너지의 단위 J(줄)을 썼다.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일’이란 멋진 프로젝트를 의미했다. 잘 나가던 건축가나 포토그래퍼의 홈페이지를 보면 늘 메뉴 상단에 ‘WORK’란 메뉴가 있었고 그걸 클릭하면 근사한 작업물들이 나왔다.


이제는 일이 단순히 역학이나 프로젝트를 넘어, 우리의 삶 그 자체임을 안다. 사전에서도 일을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생계활동’으로 정의한다. 그럼 송이가 태어나고, 각각 일터로 돌아간 아내와 나에게 일이란 뭘까. 우리만의 답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 송이가 조금만 더 자라면, 더 어려운 질문을 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엄마랑 아빠는 무슨 일 해?” “그 일, 왜 하는 거야?”


삼촌과 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까지 내가 준비해야 할 건 5년 재무 계획. 송이가 8살이 될 무렵이니 해외 어느 도시에 체류 중이거나 귀국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때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일하고 있지 않을까. 나은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테헤란로를 걷는다.


글 | 손현 (2023.7.9.)


Note 1. 육아일기를 가장한 아빠들의 성장일기 '썬데이 파더스 클럽(Sunday Fathers Club)'의 73번째 뉴스레터로 발행된 글입니다.


Note 2. 마침 어제 롱블랙에서 발행한 유현준 교수의 인터뷰를 읽으며, 테헤란로의 비밀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선릉역에서 역삼역까지 걷는 동안, 거리를 평소보다 유심히 봤는데 그 넓은 거리에 벤치가 딱 하나 있더군요.

상점보다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교류점이 ‘벤치’입니다. 뉴욕 맨해튼은 부촌이지만 벤치가 많아요. 덕분에 누구나 앉아 정취를 즐길 수 있죠. 반면 서울의 가로수길은 벤치가 적어요. 돈이 없으면 앉을 수도 없는 거예요. 빈부격차가 커지죠.

“서울을 이대로 두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가 분열될 수 있어요. 그걸 예방하려면 하드웨어인 건축을 개선해야 합니다. 화합을 목표로요.”

혹시 유 교수, 이타주의자일까요? 그는 허심탄회하게 웃습니다.

“사는 게 힘들잖아요. 인생이 축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고난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가 원하는 삶을 사니까 행복하지만, 절망의 세월이 길었어요. ‘왜 나에겐 기회가 안 올까’ 그런 생각을 20년쯤 했습니다. 요즘 사회엔 이런 실망과 분노가 가득해요. 제가 도시를 사유하는 건, ‘다같이 더 행복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같아요 .”

— 김진영 & 전영인 에디터, 유현준: ‘좋은 도시’를 사유할수록, 우리는 더 다정한 이웃이 된다 (롱블랙, 202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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