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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Mar 02. 2016

큰 아버지를 보내며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두 분 모두 아버지가 어렸을 적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릉 큰 집에 가면 언제나 큰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셨다. 

가족을 돌보고, 집안의 일들과 관련하여 언제나 큰 책임을 맡으신 것이다. 


큰 아버지는 말이 거의 없으셨다. 우리네 어른들이 그렇듯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를 챙기셨다.


그런데 지난 주에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폐암 진단을 받으신 지 약 1년만이다.

상복을 입고, 왼쪽 팔에 노란 완장을 하고 조문 오시는 분들을 맞이했다.

이런 역할은 처음이었고, 마음은 많이 쓸쓸했다. 


특히 발인을 하는 날, 큰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큰 아버지의 흔적이 남긴 공간을 돌아다닐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많이 흘렸다. 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큰 아버지와 추억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기억들이 나와 함께했다. 


식사를 같이 하고, 누워서 TV를 보는 공간에 큰 아버지는 이제 더이상 없으시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더이상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큰 아버지를 보내며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되돌아 보았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과 추억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큰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큰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를 나는 평생토록 기억할 것이다.


" 큰 아버지가 그렇게 해외로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했잖니. 얼른 몸 나으셔서 해외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셨단다."


앞으로 더 큰 세상을 보고, 그것을 기록해서 큰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다. 멀리서라도.

큰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 신기하게도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그 눈은 또 왜이리 아름다운지.


언제나 소중한 것은 그 끝에 가봐야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나는 아직도 많이 어리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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