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바닐라라떼, 엄마는 카스테라
올해 초 자취방을 나와 본가로 향했다. 교통난 때문에 본가에서 나온 지 2년여 만이었다. 자취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경기도 비역세권의 삶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굳이 한기 넘치는 자취방에서 홀로 김치찌개를 끓여먹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주말마다 방문했던 집이 남의 집처럼 느껴졌는데, 이내 다시 익숙해졌다. 아침이면 알람 소리에 홀로 깨 비요뜨니 바나나니 하는 것들을 입에 대충 집어넣었던 것도 간편하고 스마트한 삶이었지만, 역시 된장찌개 끓는 소리만큼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집에서 일어나 아침부터 분주하게 계란 프라이니 찌개니 하는 것들을 손수 끓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나 참 외롭게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었다.
더 이상 자취방이 필요하지 않아 본가로 왔지만 부모님과 함께한 올해 매 순간은 내게 가장 뜻깊은 기억이다. 올해 초 얼떨결에 은퇴하게 된 아빠와 엄마와 그리고 재택근무하는 내가 어우러져 삼시 세 끼를 식탁에서 같이 먹었다. 은퇴하면 중국 장가계를 꼭 가보고 싶다는 아빠는 코로나19에 발목 잡혀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무한 반복 시청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와 함께 나른한 오후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방에서 일하고 나오면 낮잠시간을 갖는 부모님의 모습도 내겐 뭔가 기분 좋은 광경이었다.
아빠는 말하기 좋아하는 내게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전달했고, 때때로 내가 끓여주는 라면을 말없이 잘 먹었다. 주말농장에서 키운 방울토마토와 상추를 함께 뜯으러 가기도 했다. 장바구니에 농작물을 꾹꾹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냥 시골 가서 부모님과 함께 남은 생을 이렇게 계속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늦은 오후 지는 노을을 보면서 소소한 농작물을 함께 따오는 즐거움이란. 그리고 둘러앉아 된장에 쌈을 싸 먹는 단순한 밥상은 자취방에서 시켜먹었던 2만 원짜리 치킨보다 훨씬 행복했다.
나는 원래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크게 몰랐던 사람이었다. 중학교까지 부모님은 돈 때문에 자주 싸웠다. 늦은 나이에 경제적 독립을 한 아빠는 도무지 아내와 딸들을 건사하기에 벅찼던 것 같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엄마는 카드 돌려막기로 나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키웠다. 내 인생의 절반은 은행이 키웠다고 말해도 전혀 거짓이 아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아빠는 더 많은 돈을 벌기보다 더 적게 쓰길 원했다.
그런데 엄마가 크게 아픈 뒤로 나는 엄마, 아빠의 행복에 집착했던 것 같다. 올해는 내가 경제활동을 한 이래로 부모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해다. 아빠가 맥심 믹스커피나 레스비가 아닌 스타벅스나 동네 유명 카페의 바닐라라떼를 좋아하는 것도 올해 알았다. 엄마는 늦은 점심을 먹길 좋아하고 가끔 우유에 카스텔라를 찍어먹길 즐기며, 치킨보다 피자를 더 좋아하고 아직 건강을 회복 중이라는 것도 올해 깨달았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단연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남은 한 달도 최선을 다해 말동무가 돼드려야지. 나는 돈은 많진 않지만 말은 참 많은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