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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가사리 Dec 01. 2021

운동은 나를 조금씩 살렸다


일기장을 펼쳤다. 2018년 목표 '살 빼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매년, 매달 목표에 "이놈의 살 빼야지"가 나왔다. 저녁께 무심코 들춰본 일기장인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오른손에 일기장을 왼손엔 오리온에서 재출시한 '와클'이란 과자를 들고 있었다.


순간 "이 인간아"하고 거울을 봤다. 이미 볼살은 빵빵해졌고, 의자에 ㄴ자로 앉아있는 사이 내 뱃살은 바지 고무줄 위로 수줍게 몸체를 걸쳐놓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신이 훌렁훌렁,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뚱이였다. 솔직히 몰랐다면 거짓말이다. 옷장엔 입기 편한데 그나마 괜찮은 고무줄 바지와 원피스가 다였다. 꽉 끼는 청바지나 유행 타는 크롭티 따위는 없었다.


그냥 무작정 천변을 걷기로 했다. 이대로 언제까지 살 거냐는 내면의 외침이 시작됐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비가 세차게 내려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을날이었는데 고민 끝에 걷기로 했다. 춥다면 들어오지 뭐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빽빽하던 천변엔 어쩐 일인지 사람 한 명 없었다.


정말 천변을 내가 전세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때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두려움의 정도가 때론 너무 과장돼 있는 것 같다고. 실제로 마주하고 포기해도 전혀 늦지 않다고 말이다. 마치 운동 가기 전엔 고통스럽지만, 정작 뛰고 나면 엔돌핀이 도는 것처럼 말이다.


그 이후로 6개월 동안 운동과 식단관리를 했다. 전혀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대충대충. 그러나 꾸준히 했다. 그 결과 5킬로 이상 살을 뺄 수 있었다. 허리가 줄어 사놓고 못 입었던  청바지를 입었다. 니트에 뱃살이 드러나는 게 싫어 방치했던 것도 다시 입어봤다. 이 행복을 이렇게 오랫동안 간절히 바랐는데 행동한 지 6개월도 안돼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옷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도 다시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았다. 


옷뿐이 아니다. 만성 위염에 시달리던 내가 규칙적인 걷기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속이 편안해졌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걸었더니 하루를 반성하고 다음날을 계획하는 구상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여러 상념을 운동하면서 떨치니 건강도, 인간관계도, 업무 성과도 더 좋아졌다. 


언제나 그렇듯 운동은 나를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 작은 마법을 맛봤다. 내년에도 보이지 않게 조금씩 운동을 할 것 같다. 만약 무언가로 괴롭다면 패딩을 두껍게 입고 시내 한 바퀴를 돌아보자. 낙엽 쏟아진 거리에 걱정을 버리고, 희망찬 생각들이 나를 감싸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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