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수는 없다.
하나하나 내려놓기

by 늘보

2. 완벽할 수는 없다, 하나하나 내려놓기


“누가 엄마 책상에 있는 거 만졌니?


자신의 책상에 물건을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런 성격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사용했으면 바로 제자리. 정리정돈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나처럼 이런 성향의 사람을 예민하다 또는 까다롭다며 어려워하거나 불편해하기도 한다. 현관을 나서기 전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어야 나갈 수 있다. 여행을 가거나 하루 외출을 할 시 단장하는 시간보다 정리하는 시간이 더 많다. 아이들도 이제는 으레 정리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각자의 몫을 하고 있다. 집에 들어 왔을 때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외출했다가 지친 몸을 털썩 주저 앉아 쉬고 싶다. 하지만 무엇인가 할 일이 있으면 앉기 전에 먼저 손이 치우고 있으니 여행에서 돌아와 아늑한 집을 즐길 수가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을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다. 각을 딱 맞춰서 먼지 한 톨 없는 집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감탄을 한다. 그렇게까지 하려면 쉴 틈 없이 움직이고 매일 같이 닦아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나에게는 그런 에너지까지는 없나 보다. 다만 정리가 한 눈에 되어있으면 된다. 쨍 하고 해가 나는 날, 그 빛 때문에 창문에 뽀얀 먼지나 손 자국이 적나라게 드러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햇빛은 좋지만 그래도 해가 진 것이 아니 약간 해가 덜 비추는 날이 좋을 때도 있다. 먼지를 본 순간 한숨을 쉰다. ‘아, 또 닦아야 해.’


결혼 전에는 물론 집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약간 게으른 사람이다. 그리고 귀찮니즘이

몸에 붙어있어 별명이 ‘늘보’라고 붙기도 했던 사람이다. 참, 평생을 보고 듣는 것들이 무섭기는

하다. 친정엄마는 매일 같이 집을 청소하고 걸레질을 하셨다. 그것을 내가 지금 하고 있다. 나이

들면서 엄마의 습관이 내게도 그대로 베어 있었다. 지금은 친정 엄마도 이렇게 얘기하신다.


“내가 미쳤지. 매일 청소를 했으니… 허리가 아파 죽겠다.

너는 그러고 살지 말아라. 대충하고 살아.”

하지만 우리 집에 와서 또 일을 하신다. 나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데 엄마 눈에 보이는 지저분한

부분들을 청소하신다.


깨끗한 것은 좋다. 하지만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내 스스로에게 질리기 시작하더라. 이제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을 간 이 오전 시간을 알차게 나에게 쓰기로 했다.


이 시간만큼은 최소한의 집안 일을 하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기!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와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다. 나의 짜증을 아이들에게도 가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만 집중을 할 수도 있었다. 오전 시간이라고 해 봐야 서너 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려놓고 하는 것이 좋다.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에너지를 쏟아 보자!


먼저 내가 가장 하기 싫은 설거지는 하루에 두 번, 청소는 기계를 싫어하는 나에게 남편이 사다 준 로봇에게 맡겼다. 언젠가 설거지도 식기세척기로 바꾸겠지. 남편이 열심히 옆에서 나를 설득 중이다. 이 시대에 기계가 왜 이렇게 믿음직스럽지가 못한지… 빨래는 어쩔 수 없다. 우리 집에서 가장 불쌍한 기계가 세탁기다. 매일 돌아가고 하루에 세 번 이상을 돌릴 때도 있다. 가끔은 이 기계는 제대로 하는지 실험을 해 보려다가 생각을 접었다. 도저히 손빨래는 할 수 없으니… 집안 일은 하루 종일해도 아무런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내려놓으려 한다. 치워놓으면 다시 어질러져 있고 정성스레 빨면 그 다음 날 흙투성이가 돼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고 포기했다. 그렇다고 입고 다니지 말라고 얌전히 앉아만 있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한 번은 우리 둘째 아이가 내 짜증에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엄마,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 주고 청소는 로봇이 다 하는데 뭐가 힘들다는 거야?”

정말 배신감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야! 빨래가 안녕하세요 세탁기 님! 제가 걸어 들어갈게요. 하고 다 됐으니 스스로 걸어서 건조대에 올라가니? 다 마르면 스스로 접어 서랍에 들어가는 줄 알아? 그리고 로봇은 혼자 쓰레기를 비우고 가구에 쌓이는 먼지들은 혼자 날라 다니는 게 아니란다! 네 책상에 지우개 가루들도 혼자 막 없어지나 보네!”

그랬더니 철부지 엉뚱 발랄 둘째 아드님께서는

“으헤헤, 진짜 그런 거 아니야? 빨래가 막 걸어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고 떠든다. 엄마 속은 복장이 터지는데…


집안 일 이외에도 내려놓기 시작한 것들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간 관계다. 예전에는 나에게만 연락을 안 하거나 모임에 나만 부르지 않았거나 하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모임들과 만남이 의미가 있는 것 일까.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면 주로 듣다가 온다. 나도 내 얘기를 해서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도 작고 내 목소리를 내는데 익숙하지가 않아 그냥 듣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쩔 때는 다른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보다 나는 두 세 명이 모이는 모임을 더 좋아한다.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고 나도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특별하게 가야 하는 모임이 아니면 다른 모임을 가지려는 마음도 내려놓았다.


살면서 하나하나 내려놓다 보면 시간이 의외로 많이 생긴다. 그 시간에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고 싶을 것을 해 보면 수다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좋다. 물론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에 한 두 시간만이라도 아무것도 안하고 오로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를 바란다.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들도 내 가정도 행복해 질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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