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어디에 있죠?
내려놓기 시작하면 의외로 많은 것에 눈을 감게 된다.
그래도 깜빡 잊고 이것저것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런, 습관이 정말 무섭구나’를 깨닫는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남편 월급으로는 무엇인가를 배울 여유는 없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 아이들 하나라도 더 가르칠 돈은 있지만 나를 가르칠 돈은 왜 그리 선뜻 지갑을 열지 못 하는지… 서글펐다. 퇴근 잘 한 남편에게 넋두리를 하면 “배워!”라는 명쾌한 답변이 돌아온다. “돈이 어디에 있나요? 당신은 몇 년 째 월급을 올려주지 않잖아! 매 년 물가는 오르는데 같은 돈을 5년 넘게 받고 있거든요!” 결국 해결책 없는 무의미한 싸움을 한다.
셋째를 낳고 친정 엄마가 애를 봐 줄 테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배워 보라라고 하셨다.
때마침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배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서예를 4년 넘게 하면서 소질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었고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바람에 무턱대고 시작한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작가님~’하면서 띄워주는 남편이 한 번은 내게 이런 말을 농담처럼 했다.
“작업실은 당신 돈으로 해.”
“누구 아내가 공방을 냈는데 한 달 월세만 200만원이래.”
왜 내게 그런 얘기를 미리 하는 걸까. 나도 알고 있다. 작업실을 가질 수는 있지만 유지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접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한 수입 보장이 있어야 작업실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하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나도 둘째를 낳기 전까지 직장 생활을 했고 인정받는 강사였다. 하지만 10년간 집에 있으니 남편 눈에 나는 물가에 내 논 어린아이 같아 보이나 보다. 하긴 나름 열심히 글씨를 쓰고 글을 쓰고는 있지만 성과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을 하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인정을 받는 기쁨도 생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냥 쓰기만 했다. 열심히!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열심히!” 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때까지는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좋은 고등학교에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하지만 그 때까지였다. ‘열심히’라는 단어가 통한 건. ‘열심히’ + ‘요령’ +’집중’ 등의 단어들이 더 필요했었다. 상승 곡선을 그리던 내 삶에 그토록 쓴 잔을 마신 경험은 없다. 그래도 그 때의 좌절이 좌절로만 끝나 버리지 않았다. 그런 굴곡도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겪어왔던 모든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은 한 개라도 버릴 것이 없었다는 점. 지금 살면서 배운다.
돈이 있어야 배우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의외로 무료 교육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천국이 있지 않은가.
나의 이 일들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SNS.
공짜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들이 꽤 있었다. 우연하게 검색을 하다가 말 그대로 걸린 것이다.
인생에 ‘교육’, ‘강연’ 은 찾아 들을만한 가치가 반드시 있는 것 같다. 내게 갇혀 살던 시점에 번쩍하고 시야를 한 번에 틔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까.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니 다른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고 누군가가 교육시켜주지도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뒤로 계속 물러나기만 하고 꼰대라는 소리만 듣게 될지도 모른다. 책도 읽고 강연도 찾아 듣고 교육도 이것저것 알아 보는 적극적인 자세도 때로는 필요한 것 같다.
한 강사가 말했던 이 말이 지금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일들이 쓸모 없던 것이 아니에요. 하나하나의 기록들이 지금 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생각으로 끝내지 말고 나눠드린 종이에 적어보세요.”
나의 모든 기록들이 쓸모 없는 것이 정말 아니었다. 두 달간의 교육을 들으면서 두리뭉실 했던 처음 시작과 달리 중간으로 가면서 원하는 것이 뚜렷해졌고 교육이 끝날 무렵 나는 이미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내가 해 오던 것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투자를 하려면 시간 관리 또한 중요하다. 나의 하루를 시간대 별로 적어 보면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시간을 잡아서 나에게 투자해 보면 어떨까.
‘나’는 어디에 있지?
날이 너무 좋아서 날이 너무 흐려서 내 기분도 기복이 많은 날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날씨에 따라 내 몸 상태에 따라 감정이 널을 뛴다.
하지만 내 안에 나를 종이에 적기 시작하면 자고 있던 나를 마주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나와 얘기를 하면서 오늘도 나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