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아침 식사 담당 셰프가 된 지 벌써 삼 년. 이제는 알람 없이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 제일 먼저 에스프레소 머신 전원을 켠다. 물이 뜨거워지려면 십 분쯤 걸리니까, 그 사이에 개와 고양이 아침을 챙긴다. 열두 살 개, 일곱 살 고양이. 둘 다 손이 많이 간다. 사료에 보충제를 섞어 주고 나면 커피 내릴 시간이 딱 맞는다. 커피를 내려서 소파에 앉는다. 멍하니 홀짝이다 보면 스물여 분쯤 지나고, 그제야 정신이 든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처음 샀던 건 2003년, 영국 유학 중이었다. 커피값이 비쌌고, 마시고 싶을 때 못 마시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 해가 진 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결국 마시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결심했다. 자주 가던 카페 바리스타에게 추천받아 산 머신은 기능은 단순했지만 고장도 거의 없었다. 지금도 같은 모델을 쓰고 있다.
어릴 때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고3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커피 없이는 못 산다고 할 때도, 나한텐 그저 쓴 검은 물일 뿐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던 건 아빠였다. 커피랑 담배가 친구라고 했던 사람. 주말 아침이면 자판기 커피 심부름을 다녔다.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 평범한 레시피였다. 심부름이 귀찮다며 투덜거리던 기억도, 티스푼에 남은 커피를 살짝 맛보다가 인상을 찌푸리던 기억도 난다. "아빠,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그러면 아빠는 말했다. "씁쓸해서 맛있잖아. 너도 어른 되면 알 거야."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커피를 줄이라는 말을 들었다. 수면장애로 고생한다 했더니, 의사가 커피 몇 잔 마시냐고 물었다. 네 잔이라 했지만 사실 더블 에스프레소 네 잔이라 여덟 잔일 수도 있었다. 그건 말 안 했다. 예전엔 한 방울만 마셔도 인상 쓰던 내가, 이제는 커피를 자제하라는 말을 듣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마시기 시작했을까.
스무 살 가을, 유학을 갔다. 부모님 곁을 떠나 외국에서 혼자 산다는 건 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런던은 크고 영어는 낯설었다. 수업이 끝나면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자책했다. 그 사람을 만난 건 그 무렵이다. 매일 콜라 두 캔을 꺼내 마시는 게 신기했다며 먼저 말을 걸었다. 콜라밖에 못 마신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별 얘기도 아니었는데, 진지하게 들어줬다.
그는 나보다 세 살 많았고, 런던 생활도 오래돼서 아는 게 많았다. 카페도 자주 갔다. 스타벅스, 카페 네로, 커피 리퍼블릭, 코스타 같은 체인부터 오래된 골목 카페까지 다양했다. 맛있는 원두, 오래된 분위기, 다 그와 함께한 기억이다. 나는 커피 맛도 모르면서 늘 콜라만 시켰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살짝 불만을 내비쳤고, 어느 날엔가 말했다. "어차피 콜라 마실 거잖아?" 괜히 오기가 생겨 모카를 시켰다. 덜 쓴 커피라 해서 골랐다. 억지로 다 마셨고, 그날 이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모카에서 카푸치노로, 카푸치노에서 에스프레소로.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방학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고, 다시 돌아갈 날이 다가오던 즈음,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밥 한 끼는 같이 먹자고. 뭐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스타벅스를 같이 갔던 건 또렷하다. 아빠에게는 처음이었다. 카페도, 아들과 마시는 커피도. "너도 커피 마셔?" 놀라는 아빠에게 나는 말했다. "이제 커피 없이는 못 살아." 엄마가 거든다. "지 아빠 닮았네. 담배도 피냐?"
아빠는 뭐 마실 거냐는 내 질문에 "아무거나 시켜"라 했고, 나는 카푸치노를 시켰다. 거품 잔뜩 얹힌 커피를 받고는 아빠가 갸우뚱한다. "거품이 왜 이리 많아. 집 커피가 훨씬 맛있다.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 먹냐." 나는 말한다. "촌스럽게 왜 그래. 이건 에스프레소 베이스야. 이탈리아도 갔다 온 사람이 왜 이걸 못 마셔?" 아빠는 인상을 찌푸린다. 그게 우리 부자의 첫이자 마지막 카페 나들이였다.
다음 해 여름, 아빠는 머리를 짧게 깎고 있었다. 폐암 말기였다. 걱정 끼치기 싫다며 그제야 말하셨다. 런던에서 전화할 때마다 쉰 목소리였던 것도, 그때 알게 됐다. 방학 내내 병원에 다녔다. 진료실 앞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며 기다리던 날들. 지루하고 졸린 어느 날, 자판기 커피를 뽑고 있었는데 진료를 마친 아빠가 나왔다. "한 잔 드릴까요?" 묻자, 엄마가 말했다. "커피 마시면 안 돼. 항암 중이잖아. 몰랐어?" 몰랐다. 그날 밤 많이 울었다. 아빠에게 커피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실 수도 없었다.
삼월이 되면 아빠 제사를 준비한다. 한국에 살지 않으니, 향 하나 제대로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료를 모은다. 제사의 마지막엔 늘 커피 한 잔을 올린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도 그랬다. 졸업 논문 쓰다가 전화를 받았다. 가셨다고. 매일 전화했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 주일쯤 연락을 못 드렸다. 휴학을 했어야 했다. 굳이 그때 졸업하지 않아도 됐는데. 그땐 더 곁에 있어야 했다. 지금은 아빠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어 세워두고, 말한다. 우리 아빠는 이런 분이셨다고.
이제는 알겠다. 씁쓸해서 맛있다는 그 말. 다만, 아빠가 옆에 없다는 게 다를 뿐이다.
아침 근무라 퇴근이 빠르다. 집에 돌아오면 오후 한 시. 하루의 마지막 커피를 내린다. 아침과 다르지 않다. 머신을 켜고, 개와 고양이의 두 번째 식사를 챙기고, 커피를 만든다. 그리고 마신다. 이십 년 전, 내가 타 준 커피를 마시던 아빠도, 런던에서 처음 커피를 알려준 그 사람도 이제 곁에 없다. 지금은 나와 커피 머신만이 남아 있다. 커피를 마신다. 씁쓸하지만, 맛있다. 이 맛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