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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day Jan 14. 2018

크루즈 승무원 노트 #2

가장 힘든 것, 언어란 장애물


가장 힘들었던 일


    힘들었던 일은 많다. 그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혹은 힘들게 만들게 된 요인은 누가 뭐래도 '언어'이다.  
   크루즈의 공통 언어는 '영어', 그리고 우리 회사 게스트의 90% 이상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위해서 영어가 필수이다.  

   당연히 크루즈 승무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 영어 공부는 꾸준히 해왔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영어공부를 고작 몇 년 했다고 영어가 어떻게 훅 늘겠냐는 거다.  특히 나의 영어 이력을 보자면, 중학교 때 영어점수 38점을 맞고 영어에 연이 없다 생각하여 손을 놔버렸고, 전문계 고등학교에 입학 후 영어 과외를 시작하기 위해 만난 과외 선생님의 첫 대면에서 Apple의 스펠링을 몰라 선생님을 당황시켰다.

   여차여차 대학교에 입학하여 첫 모의토익을 봤을 땐 신발 사이즈 보다 낮은 185점이란 점수를 받아 '꼴통'이란 별명도 생겼었다.  모든 게 그렇겠지만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부모님께서 돈을 들여 공부를 시켜도, 시간을 들여도 머리에 남는 건 전혀 없다.  
  영어는 나한테 그런 존재였다. 대학생활을 하며 2년째 영어 과목 F를 받고 나니 영어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2013년, 명사 동사 형용사를 시작으로 처음 자의적으로 영어를 시작했다.  




" I'm sorry but I don't understand you.
 Can you please bring someone else?"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게스트를 응대하는 것은 필수다, 즉 게스트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어떤 부서보다도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악센트를 가진 고객들, 너무 빠른 억양, 내가 모르는 단어들,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당연히 일에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 혼자였기에 모국어로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선사에서 인터넷이 제한적이어서 인터넷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나를 답답해하는 손님들은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기 원하면서, 똑같은 돈을 받으면서도 동료들은 나 때문에 일을 더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참 괴로웠다. 짜증 부리지 않고 도와주는 동료가 있는가 하며, "I am not baby sitter!"라는 동료도 있었다.  
   그야말로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건, 다 큰 성인인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우스께 소리로 그런 소리를 한다. 영어로 일을 그만둔다는 소리를 할 줄 몰라 한 컨트렉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고!  
    100프로 농담은 아니고 사실이기도 하다. 내가 만약 "I want to leave"라고 한다면 "Why?"라는 질문에 영어로 대답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던 한 달 한 달이 지나던 어느 날,  3개월 어느 때쯤 갑자기 입이 트이고 귀가 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뒤늦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차가 되니 슬럼프에 빠졌다, 내가 영어가 부족해 일을 늦게 배우기 시작했고 배우는 속도가 더디다 보니 남들보다 뒤처지는 나를 보며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슬럼프가 왔다. 그럴 즈음에 나는 첫 휴가를 받았다.
   알람 없이 잠을 자는 꿀잠도 며칠뿐, 휴가 4일차가 되니 다시 선상생활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세 번째 컨트렉을 하고 있더라, 그때보단 조금 더 성숙하게, 조금 더 프로페셔널하게.






에피소드



  우리 부서는 안전(Safety)에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는 부서이기도 하다. 프런트 데스크로 911 전화가 오는데 응급상황인 만큼 곧장 전화를 받아야 한다.  
   간혹 들어 응급전화를 걸어 룸서비스를 시키는 사람도 있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는데 밴드를 가져다 달라는 응급 아닌 전화도 오곤 한다.  하지만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한다는 생각에 나는 911 전화가 울리면 온몸이 긴장돼 굳어버린다.  
   한 번은 전화를 받았다. 옆방에서 커플이 싸우는데 한 명이 베란다 밖으로 떨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Man Overboard라고 하는데
게스트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고 몇 개의 단어만 들었는데 : Couple, Fighting, Man overboard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의 퍼즐을 다 맞춰졌다. 곧장 시큐리티에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다.  얼마 후, 시큐리티가 찾아왔다.

"May, you can't report emergency situation easily, Man overboard is really serious issue".

   사실 옆방 커플이 큰소리로 싸우고 있던 것은 맞지만, Man overboard를 하려 하진 않았던 것, 그리고 제보자 또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응급한 상황에 굳어져 버린 나는 머릿속에 모든 퍼즐을 맞춰 사실이 아닌 하나의 드라마를 만든 것, 참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나로 인해 하나의 생명을 잃게 되면 어쩌지란 생각에. 한동안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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