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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day Jan 20. 2018

크루즈 승무원 노트 #4

견장의 무게

견장의 무게


   보통 해외취업 혹은 외국계 기업이라 하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게 더 자유로운 직급체계를 생각한다. 나 또한 승선을 앞두고 한국 회사의 회식문화를 벗어나 계급의 상하관계에서 조금 멀어진, 차별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크루즈 선상 위의 생활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하며 수직관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크루 식당이 계급별로 3개로 나뉘고 음식의 질이 다른 것을 보면 분명 내가 꿈꿔왔던 자유로움과는 다르다.

   유니폼에 계급을 알려주는 견장이 있다. 견장이란 어깨에 붙이는 직위나 계급을 나타내는 표장이라 한다. 나는 게스트 서비스 오피서 (Guest Service Officer)로 별과 함께 1줄 반인 스프라이트 견장이 있다. 계급이 높아지면서 견장의 줄이 많아지는데 오피스가 아닌 부서나 직급은 보통 견장이 없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처음 견장을 달았을 때, 우리 슈퍼바이저가 물었다. “어때? 어깨가 무겁지?”안 차던 견장을 차니 불편하긴 했어도 드디어 정식으로 오피서가 된 것 같아 오히려 어깨가 들썩였다. 견장의 무게와 책임이 크리라곤 전혀 몰랐다.

어깨 위의 견장








리더로써의 책임감

    크루즈에서 가장 중요한건 뭐라해도 안전 그리고 안전이다. 그 어떠한 이유와 상황도 안전보다 먼저일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교육은 끊임없고 홈포트에서 매 출항 때마다 게스트들과 응급상황 대피훈련(Safety Briefing)이 꼭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응급상황 대피훈련의 리더(Leader)는 나다.
 
   게스트들의 대피장소(Muster Station)는 선사 위에서 여러 곳으로 나뉜다. 그 중에 나는 한 섹션의 리더로써 약 300명 정도의 게스트와 10명 정도의 크루를 총괄한다. 이 많은 인원을 한곳에 모아놓고 컨트롤하는건 절대 쉽지 않다. 보통 내가 해야하는 일은 내 섹션에 지정된 크루들의 포지션에 맞게 잘하는지 통솔하며 필요에 의해 또 다른 듀티를 주어줄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크루들을 관리하고 그 크루들이 본인에게 주어진 듀티로 게스트들을 컨트롤하는게 맞다. 아무리 연습하고 회의를 거듭해도 매번 쉬운일이 아니다.

   나의 첫 트레이닝이 끝나고 정식으로 리더가 되었을 때 너무 무서웠다. 지금 당장 응급상황이 일어난다해도 내 한 몸 스스로 케어할 수 없을 만큼 지식이 부족했고 누구에게 지시를 할만한 언어 실력이 안됬기 때문에 이 많은 이들의 목숨이 어쩌면 나한테 달려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리더의 모자를 썼지만 제 역할 못하고 멀뚱히 서있는 허수아비와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플로리다의 더운 햇볕아래 300명이 옹기종기 모여 20분간 안전교육을 진행하다보니 거구의 게스트가 그만 현기증에 정신을 잃어 쓰러져버렸다. 오마이갓,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하지? 우왕좌왕 911에 전화하러 전화기를 찾는데 또 다른 게스트가 쓰러졌다. 같은 시간에 두명의 게스트가 쓰러지다니 나는 이미 멘붕. 다행히 오래 일한 크루멤버가 곧장 911에 전화하고 게스트를 눕혀 공간을 확보한 뒤 메디컬팀이 올때까지 상황을 잘 대처했다. 나는 그저 멀뚱 멀뚱 처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날 하루 나의 기분의 최악이었다 스스로가 본인의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 분수에 맞지 않은 무거운 책임을 맡고있다는 부담감과 상황을 잘 대처하지 못했다면 큰일로 이어졌을지도 몰랐을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하루 하루, 계속 되는 안전교육의 반복에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다. 게스트없이 크루들만 진행하는 대피훈련이 있는데 그때는 내가 트레이너가 되어 크루들을 모아놓고 간단한 트레이닝을 진행하고 우리 섹션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고쳤으면 하는 부분은 어떤지 의견을 주고 받기도 한다. 사실 리더로써 스스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있게 크루들을 컨트롤 해야하는게 맞다. 그래야 크루들도 나를 믿고 따라오고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받은 지시사항을 처리 한 뒤 미팅에서 의견을 말하면 되니까 말이다. 나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했다. 우선 나는 강하게 지시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닐 뿐더러 나의 부족함을 감출 수도 없었기에 부족함에도 아는척하기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조금 더 경험이 있는 크루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매 미팅때마다 한명 한명 인사를 하고 포지션과 듀티를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매번 했다. 그랬더니 크루들이 나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리고 경험 부족한 리더지만 본인이 받은 존중처럼 그들도 나를 존중해줬고 그리고 항상 서포트해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섹션이 함께 문제 없이 훈련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느낀건, 가장 기본적인 인사와 이름 부르기, 감사인사는 생각 보다 큰 힘을 갖는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난 뒤에 나는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큰 사건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크루즈도 침몰하면 어떡해?" 물론 크루즈는 세월호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지만 침몰이나 화재의 위험이 어쩌면 더 할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리더로써 아주 큰 임무를 맡고 있다. 이제는 서툴지 않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익숙해졌고, 크루즈에선 안전 교육을 엄청나게 받으니 크루즈 여행을 앞둔 여행자 분들은 너무 큰 걱정 안고 오지 말고 여행기간동안 편안한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 크루즈 승무원 2년차인 나는 실제로 비행기보다, 땅보다 안전한 곳이 크루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FYI,
대피장소 섹션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섹션엔 나를 포함 해 2명의 리더가 배치된다. 그리고 그 위에 여러 섹션을 총괄하는 리더 위의 수퍼바이저가 있고 그리고 모든 수퍼바이저를 총괄하는 그 위에 포지션, 그 위 그리고 그 위의 포지션까지 있다. 생각보다 디테일하고 잘짜여져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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