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주차의 생각정리
서프라이즈! 임신을 했다ㅎㅎ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큰 서프라이즈였던... 계획하지 않았기에 예상하지 못했고 그냥 너무 당황스러웠다.
한편으론 스웨덴 출장 3일전 쯤 임신 사실을 확인받아서 과연 출장을 다녀와서도 임신이 유지되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가족들과 그 전 주에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긴 했다.
체한 것 같이 속이 계속 안좋고 기운이 없었다. 근데 매일 신랑과 둘이서 밥을 먹다가 오랜만에 6명이라는 대가족이서 밥을 먹으니 식탐을 부리게 되고 빨리, 많이 먹어서 그런줄 알았다.
근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속이 안좋은 적이 없었다.
보통 한끼 정도 굶거나 화장실에 한번 다녀오면 해결되곤 했던거다.
그래서 신랑에게 말하니 혹시 모르니 임신테스트기를 한번 해보자고 했고, 다음날 아침 해보니 아주 또렷한 두줄이었다.
동네 산부인과 가서 검사를 해보니 임신 맞다고, 애기집도 보이고 뭐 어쩌구저쩌구... 6주차라고 했던 것 같다. 당장 장거리 출장이 예정되어 있고 여러모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막상 스웨덴에 가니 마땅히 입덧이라고 할만한 증상이 거의 없었다. 몇몇 음식이 먹기 싫고, 비릿한 맛이 느껴지고 하긴 했지만 이런 증상은 입맛 안맞는 나라에 가서 식사할 때마다 느끼는 것으로 크게 특징적이진 않았다.
이 아이는 내 뱃속에 있는것일까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목요일 오후 2시 반인가 인천공항에 떨어지자 마자 캐리어 끌고 산부인과로 달려갔다ㅎㅎ 심지어 여행자보험이 아직 적용되어 있어서 건강보험 적용이 안된다고 해서 비급여로 검진을 받았다ㅎㅎ (그래도 10만원은 넘을거라 생각했는데 5~6만원 선이었던 것 같다.)
초음파로 확인하니 애기 건강히 잘 있다고, 심장소리도 더 또렷해졌다는 결과를 받았다. 유퀴즈에 나왔던 전종관 교수님께서 얘기하신 대로 정말 그냥 애기마다의 팔자인가보다. (팔자라는 표현을 쓰진 않으셨지만 내가 이해한 방식입니당)
이제야 진짜 임신이 확정된 기분이었고 다시 혼돈 속으로 들어갔다. 올해는 대학원에도 가고 싶었고, 이직을 고려중인 몇몇 기관에 원서도 내볼 계획이었고,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은 지점이 많은 한해였다. 근데 갑자기 임신이라니 모든게 다 망쳐버린 기분이었고 우울했다.
항상 내 인생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뭘하면 가장 행복할지, 나에 대해서만 가장 큰 우선순위로 삼는 인생이었는데 다시는 이 인생이 지금과 같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너무 슬프고 속상했다.
나의 정체성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밖에 없을거라는 암담함이 나를 덮쳤다. 예전에 친구가 출산을 했을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영화 아가씨의 캐치프레이즈(?)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나는 심지어 '구원자'에 대한 공감도 없었다...
이런 혼돈의 시기를 한 일주일 정도 보내고 나서 그냥 받아들였고 요즘의 나는 자존과 생활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행히 입덧이나 신체적 변화가 별로 없어 유지가 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임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원래 영위하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운동이 주는 뿌듯함과 개운함을 알기에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고, (원래부터도 무리해서 하지는 않음...) 한시간 일찍 출근해서 고요속에서 독서하는 즐거움을 계속 누리고 있다. 절대적 안정을 취하지 않고, 내가 아는 내가 행복해하는 것들을 조금은 귀찮더라도 지켜나가려고 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서도, 또 그외에 어떠한 큰 변화가 내 인생에서 펼쳐진다하더라도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일상의 평온함을 온전히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다.
아이에 대해서도, 내가 내 인생을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누리며 살아가듯, 그 아이도 자신만의 팔자와 상황에 맞춰 누릴 것은 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각자의 팔자가 있는거 아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