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질 때 나를 잡아주는 건 구수한 찌개 냄새다

위로 수집: 엄마의 밥상

by haley

매일 아침, 엄마는 자신을 제외한 다섯 명의 식사를 챙겼다. 좁은 방에 다섯 명이 둘러앉을 자리도 없었을뿐더러 각자 집을 나서는 시간이 달랐으므로 엄마는 아침에만 다섯 번 밥을 펐다. 작은 쟁반에 반찬 몇 가지와 찌개, 밥을 담아 조용히 방 안으로 밀어 넣어주는 엄마에게 나는 그렇게 짜증을 냈다. 늦었는데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아침에 밥을 먹으면 하루 종일 속이 불편하다고, 온갖 짜증을 내며 그대로 쟁반을 지나쳐 집을 나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엄마와 함께 사는 내내 나는 다른 집 엄마들도 우리 엄마와 똑같은 줄 알았다. 모든 엄마가 꼬박꼬박 아침 식사를 차려주는 줄 알았다. 아침 식사를 위해 저녁 늦게까지 요리를 하는 줄 알았다. 매일 저녁, 엄마가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위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일 때면 입맛을 당기는 갓 끓인 찌개 냄새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반 그릇만 먹게 해달라고 졸랐다. 아빠와 자식 넷은 늘 엄마의 음식이 싱겁다고 투덜대면서도 그 찌개 냄새를 참지 못하고 밤 열한 시에 상을 펴고 앉아 밥그릇을 비웠다. 그리고는 아침이 되어 밥과 예의 그 찌개가 담긴 쟁반을 노룩 패스로 지나가곤 했다.



해외여행을 다닐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즐겁게 식사를 했지만 동남아에서도, 유럽에서도 나는 니글니글한 속을 부여잡고 밤마다 숙소로 돌아와 한국에서 싸온 라면을 꺼내 먹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지? 어떻게 이렇게 짠 피자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국물을 넘기는 것이 나에게는 어느새 가벼운 여행 루틴이 되었다.


한식 마니아, 토종 한국 입맛인 나는 밥을 먹을 때 늘 국이나 찌개가 필요하다. 숟가락을 들어 가장 먼저 국물 한 입을 떠먹으면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해장이 되는 느낌이다. 이에 더해 짭조름한 나물 반찬은 갓 무쳤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무가 제철일 때의 깍두기는 또 어떻고? 매일 출근해 일을 하다가 힘이 들 때면 자연스레 삼계탕, 추어탕 집을 찾아 속 뜨끈하게 보양식을 먹는다. 그렇게 힘을 내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출근한다. 나의 어쩔 수 없는 한식 입맛은 고스란히, 저녁마다 찌개를 끓이던 엄마가 심어줬다. '밥심'을 알려준 것도 엄마였다.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한다고, 빵이 어떻게 밥이 될 수 있겠냐고, 밥에는 늘 따듯한 국물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엄마는 소풍날에도 꼭 김밥과 함께 두부가 둥둥 뜬 된장국이 담긴 보온병을 안겨주곤 했다.


엄마의 시그니처 메뉴는 닭개장이다. 때때마다 기력 보충이 필요할 때, 엄마는 큰 솥에 닭개장을 끓였다. 커다란 국그릇에 밥을 푸고 그 위에 닭개장을 얹어 말아먹으면, 한 끼 식사는 뚝딱 해결됐다. 그렇게 이삼일 내내 같은 메뉴로 식사를 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온 가족이 우리 집은 닭개장 맛집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출가한 지금도 간혹,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는 엄마의 전화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닭개장"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럼 엄마는 "그래, 해놓을 게."라고 대답한다.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경우가 드문 내가 유일하게 셀 수 없이 마구 돌려본 영화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다. 김태리와 류준열을 보는 맛에 더해서,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직접 기른 농작물로 한 끼를 만들어 먹는 주인공 혜원의 삶이 영화를 보는 나에게 쉼을 가져다준다. 노량진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혜원이 결국 일상에 지쳐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보내는 사계절은, 나 또한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온기가 있는 법이라던 따듯한 류준열의 대사와 함께, 영화에서 내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려댄 대사가 있다. 그냥 서울에서 살지 왜 이곳에 내려왔냐고 불평하는 고등학생 혜원에게, 엄마는 '너를 이곳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대답한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엄마의 바람대로 정말 일상에 지친 혜원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의 흙과 바람, 햇볕으로 자란 농작물로 한 끼 한 끼 해 먹으며 일상에 지쳐있던 스스로를 지켰고, 결국 용기 있게 앞으로의 삶을 위해 움직인다.



밥을 차리는 게 일이고, 먹고 나서 치우는 게 더 일이라며 밥 하는 일을 서로에게 차일피일 미루는 우리 부부는 고된 노동에 힘든 날이면 집 근처 한방 삼계탕 집으로 향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계탕 집에 들어가 속 든든히 먹고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수다를 떨며 집으로 향한다. 힘들 때마다, 몸이 지칠 때마다 스스로에게 상을 줘야 한다며 부지런히 한방 삼계탕 집을 드나든다. 가끔 삼계탕은 김치찌개가 되고, 된장찌개가 되고, 닭볶음탕이 되고, 비지찌개가 된다.


어쩌면 혜원이 고향의 흙과 바람, 햇볕과 그것을 토대로 자란 농작물, 그리고 그 농작물로 만든 음식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나는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반찬과 찌개를 함께 내주던 '엄마의 밥상'에 뿌리내렸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때, 당장 무너질 것 같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견뎌야 할 때. 어쩌면 나는 밤마다 구수하게 퍼지던 엄마의 찌개 냄새를 기억하고, 뜨끈한 국물을 목으로 넘기던 그 시간을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을 위해 부지런히 찌개를 끓이던 엄마를 떠올리며, 다음 날 아침을 위해 하루 동안 쌓인 마음을 비워내고 그 자리를 따듯한 국물로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앉아 새벽까지 글을 쓰며, 나는 엄마의 찌개 냄새를 떠올린다. 남들은 잠을 줄여가며 직장 다니면서도 다 글을 쓰던데 나는 왜 못하는지 자책하며 시작한 이 글이, 엄마의 찌개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엄마의 찌개에, 엄마의 밥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마음이 무너질 때, 엄마의 찌개 냄새와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 찌개를 먹던 밤의 풍경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따듯한 국물을 한가득 퍼서 입에 넣으며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오늘의 위로는 '엄마의 밥상'이다. 눈앞에 있을 때는 귀한 줄 모르고 이제야 그리워하는 나에게 보내는 위로.

*글의 대표 이미지로 사용한 사진도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한 장면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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