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수집: 불면증 여신
헤르만 헤세 산문집 <밤의 사색(배명자 옮김, 반니)>을 긴 시간 읽고 있다. 헤세의 글을 읽으면서 어두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종이 위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놓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늘 새벽에 노트북 앞에 앉아 이런저런 글을 쏟아내는 내 모습으로 연결된다. 헤세는 날마다 침대에 누운 채 머릿속에 떠다니는 고민과 생각, 그리움이 불면증 여신이 불러주는 노래라고 말한다. '불면증'이라는 글은 그가 불면증 여신에게 대화를 건네는 글이다. 글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불면증 여신을 아는가? 고독한 침대에 앉아 창백한 얼굴로 세심하게 보살피는 여신을 아는가?
불면증 여신은 수많은 긴긴밤을 고독한 내 침대맡에 앉아 매끈하고 가녀린 손을 내 이마에 얹고 나른한 목소리로 무수히 많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고향의 노래, 어린 시절의 노래, 사랑의 노래, 향수의 노래, 애수에 찬 노래. 졸음이 달아난 내 피곤한 눈에 추억과 환상의 얇은 베일을 색색이 덮어주었다.
아, 너무나 느리게 가는 긴긴밤이여, 그곳에서 우리의 가장 진실한 자아는 화려한 낮의 가운을 벗고 의문과 간청과 비난의 이불을 덮고 누워 아픈 아이처럼 뒤척인다. 아, 자기 자신을 저버리고 인생의 은밀한 규칙을 어겼던 모든 순간을 아프게 또렷이 떠올려주는 밤이여! 맹목과 무자비와 오해의 사슬, 우리는 그 사슬에 꽁꽁 묶여 두려움 가득한 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무수한 비난과 자책 없이,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눈망울로 자신의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 중 '불면증'
자려고 누운 이불속에서 떠오르는 고향과 어린 시절도, 사랑과 향수, 애수의 감정도 모두 불면증 여신이 자신에게 불러준 노래라는 헤르만 헤세의 표현이 참 시적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불속에서 떠올리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불면증 여신이 우리에게 불러주는 노래라고 생각하니 그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불면증의 여신이 불러주는 노래는 잔잔한 그리움과 사랑, 향수와 같은 감정들 뿐만이 아니다. 의문과 간청, 비난, 자기 자신을 저버리고 인생의 은밀한 규칙을 어겼던 모든 순간, 맹목과 무자비와 오해, 자책도 가득하다. 생각해보면 이불속에 있는 우리에게도 불면증 여신은 때로 잔잔한 감정들이, 때로는 비난과 자책이 담긴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자칭 타칭 올빼미인 나는 새벽에 깨어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삼십 년 가까이 올빼미로 살았지만 깨어 있는 새벽이 가끔은 자의가 아닌 타의일 때도 있다. 이제껏 누구의 의도인지 알 수 없었으나 헤르만 헤세의 글에 의하면, 아마도 불면증 여신의 의도일 것이다.
자의로 깨어 있는 밤은 즐겁다. 다음 날 일정이 없는 것을 확인해 밀린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소설을 보기도 하고, 남편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순전히 잠들기에는 평화롭고 고요한 새벽의 시간이 아까워서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깨어있다. 그러나 타의로, 더 정확히는 불면증 여신의 의도로 깨어 있는 밤은 즐겁지 않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나가야 하는데도, 할 일이 쌓여 있는데도, 푹 자고 컨디션을 조절해야만 하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가만 생각해보면 불면증 여신은 꼭 정신없이 바쁜 시기에 찾아온다.
내가 거진 모든 곡을 플레이 리스트에 넣고 듣는 가수가 몇 있다. 이적, 아이유, 지코, 크러쉬. 이들의 공통점은 대다수의 곡을 직접 작사한다는 것이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이들의 작곡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그 가사를 곱씹을 때, 삶의 여러 감정들을 느낀다. 물론 둘도 없는 음색도 그 맛을 풍부하게 한다. 이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특히나 또래인 아이유와 지코, 크러쉬의 노래를 들을 때면 어쩐지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불면증 여신의 방문에 의해 잠들지 못하고 있는 한 명의 청년으로 느껴진다.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나오기 위해서 이들은 불면증 여신을 몇 번이나 맞이해야 했을까.
모든 것이 속속들이 보이는 낮은 우리에게 보다 넓은 시야를 준다. 낮 동안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낀다. 때로는 내 감정, 내 상황,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한다. 해가 떠 있는 내내 그렇게 살다가, 해가 져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시야를 좁힐 수 있다. 이불속에 있을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 감정이, 내 생각이, 내 고민이, 내 삶이 가장 무겁다. 나보다 상황이 어려운 사람이, 삶이 힘든 사람이 수없이 많다고 해도 이불속에 있을 때는 그들이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린다. 그저 내가 제일 무겁게 남아 있다. 이불속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무거운 것은 모두에게 똑같다.
아이유의 새로운 앨범이 나왔다. 이불속에 누워 찬찬히 가사를 보며 모든 곡을 듣다 <자장가>에서 멈췄다. 넷플릭스에서 아이유를 주인공으로 한 4부작 단편 드라마 <페르소나>를 본 적이 있다. 4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편이 <밤을 걷다>였다. 만날 수 없는 연인이 꿈속에서 만나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모습과 흑백의 영상미가 기억에 남는다. <자장가>라는 곡은 아이유 자신이 주연인 이 단편에서 영감을 받아 꿈에 찾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불속에서 이 노래를 듣던 나로서는, 노래 가사가 불면증 여신과 대화하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괜찮다고 그렇게 기를 쓰고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놓아버리라고. 어쩐지 위안이 된다.
헤르만 헤세의 산문을 읽고, 아이유의 노래를 듣다가 이들을 찾아온 불면증 여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찾아가는 불면증 여신이 이들에게도 똑같이 찾아갔을 뿐인데 누군가는 글로 또 누군가는 노래로 그와의 대화를 재구성해냈다. 이불속에서 느꼈을 무게가 이들의 글과 노랫말에서 성실하게도 느껴진다. 누군가는 그 무게로 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구나.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구나. <자장가>라는 노래는 우리에게 기를 쓰고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이유 본인에게는 기를 쓰고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가 아닐까.
살아가는 무게가 느껴지는 것들, 예컨대 글이나 노래, 영화, 시, 그림을 접할 때면 의례히 다짐하게 된다. 불면증 여신이 나에게 쥐어준 무게를 무기력하게 흘려보내지 말자고. 어차피 때에 따라 쥐고 있어야 할 무게라면 그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화려한 낮의 가운"을 벗고 내 위로 더해지는 수많은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곱씹고 재구성해내자고. 나도 똑같이 살아가는 무게를 누군가에게 느끼게 하자고. 그래서 오늘도 불면증 여신으로 인해 이불속에서 내가 느끼던 무게를 나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나의 언어가 이불속에 있는 누군가를 더 무겁게 하기를 바라며. 그래서 그도 그의 무게를 그가 좋아하는 무언가로 재구성하기를 바라며.
*덤으로 불면증 여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신에게 아이유의 <자장가>와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을 추천한다. 노래를 듣고 글을 읽으며 잠이 달아나더라도 불면증 여신이 주는 무게를 성실히 감당하기를.
오늘의 위로는 '불면증 여신'이다. 때때로 그녀가 찾아올 때마다, 도리어 기뻐하며 그 무게를 견딜 나에게 보내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