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고 있는 겁쟁이에게

위로 수집: 독서

by haley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많아진 요즘이다. 내 상태가 좋아야 누군가의 마음과 감정도 품어줄 것이 아니겠느냐고, 듣는 이도 없는데 속으로 부단히 외치고 있다. 요 며칠 ‘하기 싫다’는 목소리가 앞니를 치고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늘 정리하는 다이어리의 ‘해야 할 일’ 목록은 자꾸만 한 줄씩 늘어간다. 속상하게도 내 일 처리 속도는 더디다. 집에는 또 왜 이리 할 일이 많은지 정말 일을 늘리기 싫어서 굶으며 가만히 앉아만 있고 싶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어떡하지 하면서도, 이렇게라도 스스로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실 어제도 그제도 당장 해야 할 것,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한데도 미적미적 자료 준비를 핑계로 다른 책을 보았다. 업무 시간에 농땡이 안치기로 어디서든 유명한 내가, 마음의 찔림을 뒤로한 채 사무실에서 ‘죽음’에 관한 책을 읽었다(사실 이것도 설교 자료가 될까 해서 산 책이다). 웰빙이니 웰다잉이니, 죽음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무수한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죽음에 대해 읽어서 뭐해? 그것을 준비해서 뭐해? 당장 내 눈앞에는 할 일이 쌓여 있는데.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또 이 책을 덮고 키보드를 두드릴 텐데.



일 년 안에서도 수시로, 지나치게 무언가를 읽으려고 하는 시기가 온다. 마치 도장 깨듯 어지럽고 토할 정도로 읽고 읽고 또 읽으려고 한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읽고, 졸려서 눈이 감기는데도 읽고, 차라리 뭐라도 쓰는 게 나을 것이라는 압박감을 이기면서도 읽는다. 그런 시기에는 잠잠하던 #북스타그램이 활발해진다. 읽고, 찍고, 쓰고, 업로드하고, 태그를 타고 들어가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또 읽는다. 도대체 뭘 위해 읽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앞에 글자를 가져다 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이 온전히 내 것 같고, 편하다.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동화책을 껴놓고 몰래 읽다가 선생님께 머리를 맞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수십 개의 책장에 있는 책을 두고 졸업하는 게 너무 아쉬워서 도서관에서 오래도록 책을 쓰다듬고 있기도 했다. 유독 소설을 좋아했다. 틈만 나면 소설책을 사 모으는 나를 보고 엄마는 공부나 좀 하지 소설책이나 보고 있냐며 나무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짧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생의 주기에서 책을 읽으면서 낄낄 대며 웃고, 몸을 부르르 떨며 세상 모든 슬픔을 다 쥔 것 마냥 펑펑 우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내가 왜 책을, 유독 소설을 좋아했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현실 도피였다. 아동이고 청소년이었던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철저히 그 세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살인 현장에서 함께 범인을 추리하기도 하고, 연인들 사이에 앉아 삶과 사랑이 무엇인가에 관해 고민하기도 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온갖 이야기 안으로 나를 밀어 넣으며 그렇게 내가 사는 현실을 견뎌왔다. 여린 나에게 상처 주는 어른들을 견뎌왔고 부담스럽고 실수할까 봐 무섭지만 내가 해야만 하는, 해내야만 하는 일들을 견뎌왔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로는 나아지지 않는 것들이 가득한 현실을 견뎌왔다. 그리고 그 습관은 오래 이어져 지금도 내 삶에 존재하고 있다.



지난 두 주간 나는 책장 앞을 바지런히 옮겨 다니며 여러 책을 손에 쥐었다가 놓았다. 감정에 흠뻑 빠져서 읽을 책이 뭘까 고민했다. 그리고는 여러 권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고, 쌓아두고,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오늘 한 권을 끝내고 또 다른 책을 읽다가 문득 근래의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쉬려고, 위로받으려고, 부단히 책을 찾았구나. 결국 책 속의 세계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이지만, 그래서 정신이 몽롱하고 마음이 답답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지만, 그 세계이자 이 세계의 한 면을 읽어내 나를 더 단단히 세우고 싶은 마음이었구나. 살아내는 게 어려워서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는 어린애의 얼굴로 이 책 저 책 만지고 펼치고 읽고 있었구나.


내가 볼 수 없는 누군가의 시선을, 누군가의 세상을 보면서 나는 왜 쉼을 얻고, 위로를 받는 걸까. 사실 너무 겁쟁이라서, 직접 내 힘으로 부딪혀 알아갈 수가 없어서, 그래서 빽빽한 글자라도 읽어 내려가며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겁쟁아.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말하지 못해도, 쉽게 거절하지 못해도, 불쾌한 상황에서 비겁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어도, 남들에게 피해 줄까 조마조마하며 온갖 것을 떠맡고 있어도, 말과 행동이 달라 스스로 괴리를 느껴도 괜찮아. 너는 원래부터 겁쟁이였으니까. 원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그냥 지금처럼 글자로 세상을 보고, 글자로 위로받아도 괜찮아. 그렇게라도 잠깐 세상의 다른 모습과 누군가의 삶을 보고, 그들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네 자리로 돌아가면 돼. 사실 그게 네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는 이유가 아니겠어?


그래요.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말 경쾌한 에디션(김선형 옮김, 마음산책) p.60


오늘의 위로는 '독서'다. '독서'라고 쓰고 '생존'이라고 읽는다. 글자로 마음을 연명하는 안쓰러운 나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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