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버틸 필요 없다

위로 수집: 갈색 소파

by haley

이사 올 때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가구를 이고 지고 왔다. 그 덕분에 집의 실면적이 작아졌는데도 불구하고 테트리스 하듯 끼워 넣었던 가구들을 쉬는 날마다 차근차근 버리고 있다. 몇 주간 이어지는 중노동에 그다지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아 괴로우면서도, 나날이 넓어지고 깨끗해지는 집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지난주에도 방 한 면을 차지하고 있던 2인용 소파를 내다 버렸다. 상당히 속상했다. 책도 보고, 핸드폰도 하고, 잠도 자면서 꽤나 많은 시간을 보낸 갈색 소파였다. 대낮에 온 집 안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면서 소파에 누워 이것저것 하는 시간이 꿀 같았다. 찢어진 곳도 하나 없이 깨끗한 소파라서 너무 아까웠다. 더욱이 우리의 신혼집 첫 가구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지금 살고 있는 집 구조에서는 소파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점, 현재도 사람이 앉기보다는 옷이나 물건만 잔뜩 쌓여있다는 점, 소파만 치워도 방이 한결 넓고 깨끗해진다는 점 등 버려야 할 이유가 너무 다양하고 명확해서, 결국 버리기로 결정했다.


2인용이라고 해도 꽤나 무겁고 큰 소파를 둘이서 낑낑대며 들고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도착해 분리수거장에 버리려던 찰나,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가 우리 옆에 멈춰 서더니 그거 버리는 거냐고 물었다. 버리는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본인이 가져가시겠단다. 할머니의 부탁으로 다시 낑낑대며 소파를 옮겨 할머니 집으로 갔다.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에는 배게 맡에 알록달록한 나무 프레임의 소파가 있었다. 예쁘고 럭셔리 하지만 다소 딱딱해 보이는 메이드 인 이태리 소파였다. 그 소파가 있던 자리를 우리의 폭신하고 큼직한 갈색 소파가 차지했다. 너무 멀쩡해서 버리기 아쉬웠던 터인데,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니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흠도 없고, 기능이 좋은 데다 가격이 꽤 나가는 소파일지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맞지 않으면, 그것이 있는 자리가 적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 집 소파는 방 안에서 막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다 잡아먹고 있었고, 할머니 집 소파는 예쁘고 럭셔리한 가구였지만 허리와 다리가 아픈 할머니에게 맞지 않는 딱딱한 나무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깝기도 하고,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계속 품고만 있다가 큰 마음먹고 내놓았을 때, 우리의 갈색 소파는 더 유용하게 쓰일 자리를 찾아갔다. 물론 할머니의 딱딱하고 오래된 이태리 소파는 수명을 다해 버려졌지만.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 시원해야 할 마음이 한결 복잡해졌다. 십분 전만 해도 버려질 소파를 보며 아까워했는데, 더 충실히 제 역할을 할 곳으로 갔다는 사실에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때때로 내가 속한 곳에서 내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았다. 분명 나도 다양한 장점이 있는데, 내가 잘해서 인정받는 일보다는 내가 할 수 없어서 죄송한 일이 더 많았다. 내가 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정이 참 많이 들어서 떠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사실은 떠날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다른 곳에서는 잘할까? 내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기를 쓰고라도 여기서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 걸까? 나에게는 더 많은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꺼내 보이지 못하는 이곳이 정말 괜찮을까?


꼭 내가 나를 어딘가에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던 그때,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다음 자리가 있었다. 내 가치를 더 충실히 뿜어낼 수 있는 그런 자리.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상황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늘 나에게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겉모습은 멀쩡한지, 혹시 흠이 있는 것은 아닌지, 기능에 어딘가 문제가 생겼는지, 가격이 떨어졌는지,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그냥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겉모습 멀쩡히 폭신한 갈색 소파가 우리 집에서는 온갖 잡동사니 밑에 깔려 있었던 것처럼, 그냥 나도 좁은 공간에 간신히 자리를 틀고 앉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하자가 없는지 성찰할 시간에 미련 없이 털고 나왔다면, 속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다음 자리가 반드시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결혼과 함께 약 2년 간 쏠쏠하게 잘 사용한 소파가, 우리 가족의 생애주기에 따라 흐르는 시간에 따라 좁은 자리를 가득 차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가 된 것처럼, 나에게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나에게 꼭 맞는 내 자리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몸을 욱여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거나, 나의 가치와 유용성을 뽐내던 자리에서 이제는 가까스로 발버둥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에는 이웃 할머니의 집으로 간 우리의 갈색 소파를 생각해야겠다. 내 가치가 절하되거나, 나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내 장점이나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뀐 것일 테니 말이다. 모든 잡동사니를 이고 지고 꿋꿋이 버틸 필요 없이,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주어진 삶에 열중하다가 어느새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는 느긋함이 사라지고 잡동사니만 가득 쌓여 간다면, 그것을 신호로 갈색 소파를 떠올리면 된다. 온갖 불안과 무서움으로 떨며 나간 거리에서 누군가 내가 가진 것을 알아보고 내가 필요한 자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신이든, 방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에게는 꼭 맞는 자리를 떠올리고 안내해줄 수 없다. 때로 용기 있게 스스로를 내몰아 버리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오늘의 위로는 ‘갈색 소파’다. 한참 후 갈색 소파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내몰게 될 나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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