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세심함을 찾아서

위로 수집: 세심함

by haley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세심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세심함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나도 꽤나 세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오지라퍼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즐겨 사용할 정도로 '세심함'이라는 분야에서 자기 성찰이 잘 되는 편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이 상황, 저 상황, 이 일, 저 일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발발 거리며 뛰어다닌다. 물론 그러다 제 풀에 지친다. 그렇게 지칠 때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쏟아부은 것과 똑같은, 나를 향한 누군가의 세심함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내 생일이라고 한 달 전부터 나를 위한 선물을 계획하고 실행해준 고마운 동생. 많은 이들에게서 문서를 수집해 정리할 때, 나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먼저 물어봐주는 친절한 동료들. 심지어는 내가 시간을 내어 해결하겠다고 나의 몫으로 남겨둔 업무의 작은 부분까지도 일일이 신경 써서 수고를 덜어주려는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열심을 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성실한 사람들. “딱 보니까 네 거 같아서 샀어.”라며 츤데레처럼 매번 선물을 보내주는 친구.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고, 자신의 에너지를 쏟는 세심함을 가진 사람들.


그러고 보니 어느 곳에서나 내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고, 보다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세심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물론 그들은 받을 수도 있다... 미안.), 서로 오고 가는 세심함 속에 우정이나 사랑, 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의 유대감은 쌓여간다. 그렇게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세심함이 가끔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위로가 되고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



세심함에 대해 생각할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람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세심한 사람과 세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보다 세심하기 때문에 나와 결이 잘 맞겠군, 이 사람은 너무 세심하지 못해서 같이 있을 때 스트레스가 심하겠어. 이러한 분류법이 어느새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와도 쉽사리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해지는 사람도 있다. 전자인지 후자인지 판가름 나는 과정 속에 내가 ‘세심함’이라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둔 것이다.


나는 본래가 누군가를 심하게 미워할 수 있는 성품이 안되므로, 한 달 두 달 시간이 가면서 내가 ‘세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해버렸던 그 사람에게서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세심함을 발견하곤 한다. 사실 이 사람은 나와 세심함의 영역이 달랐을 뿐인데, 내 마음대로 그를 ‘세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오만을 저질렀던 것이다. ‘세심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그 사람만의 세심함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위로를 느낀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각자의 세심함이 있다. 그러니 죽어도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저 사람도 그 안에는 미세먼지 같은 세심함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미련 없이 손절하면 좋으련만 당장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는 태반의 경우에, 짜증 반 간절함 반으로 어딘가에는 붙어 있을 그의 세심함을 숨은 그림 찾기처럼 찾기 시작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감정이 가라앉고 관찰자가 된다. 이 땅에서 사회화되어 자란 이상 분명 저 인간에게도 발톱 밑에 들어갈 사이즈만큼의 세심함은 있으리라고 씩씩대며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다 정말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 그와 나는 더 이상 ‘죽어도 맞지 않을’ 사이가 될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사실이 굉장한 위로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여러 책을 펼칠 때면, 대다수의 책들이 그를 바꿀 수 없으니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고 내 관점을 바꾸라고 말한다. 내가 상대방을 바꿀 수 없는 것은 100% 진실이다.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당장 힘들어서 위로가 필요한 마음일 때, 나에게 온갖 감정이 들게 하는 그 사람에게 있을 일말의 세심함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심함.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들의 세심함이 저 인간에게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더 폭발해 화딱지가 나다가도, 결국 누군들 빌런이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끝이 난다.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그도 어느 한 구석에는 나처럼 쥐똥만 한 세심함은 묻어두고 있을 것이고, 그와 나는 그 세심함의 영역이 다른 것뿐이다. 그의 세심함의 영역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세심함이 그에게 가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위로는 '세심함'이다. 내키지 않아도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에게서 세심함을 찾기 위해 노력할(해야만 할) 나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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