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던 누군가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했을 때

위로 수집: 전조 증상

by haley

경멸할 정도로 싫었던 누군가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했을 때 밀려오는 자괴감은 어마어마하다. ‘반면교사’라는 단어가 정말 효력이 있긴 한 걸까?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도리어 각인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평소 정말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말투와 행동, 가치관을 나에게서 발견했을 때. 누구에게나 있는 그 상황에서 꽤나 크고 무거운 자괴감을 느낀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책을 보다가, 하다못해 길을 가다가도 쉽게 기분이 상한다. ‘아 이 친구가 지금 몹시 빈정상했구나’가 느껴지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는데, 특히 눈이 그렇게 빈정상해 있다고 한다. 포인트는 동일하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고 싶을 때. 작은 몸집의 아이에게 상상할 수 없는 못된 짓을 했거나, 아빠가 지속적으로 딸에게 성폭력을 가했거나,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죽였거나, 21세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시대적이며 듣기만 해도 수치스러운 발언이나 사람 목숨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제 주머니만을 걱정하는 개떡 같은 소리를 듣거나. 텔레비전이나 책, 스마트폰, 주변 사람들에게서 접하는 많은 사건들 속에 한껏 빈정상한 얼굴을 하고는 이내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내가 저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단순히 뉴스에 나오는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스를 보며 빈정상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그보다 더 미세하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람들 속에 있고 사람들에게 빚지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주제에 그 은혜를 잊은 모습이 간간히 누군가에게, 특히 나에게 나타날 때 최고 강도로 빈정상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범죄 잡학 사전>에서 무너진 삼풍백화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보쇼, 손님들도 손님들이지만 백화점이 무너진다는 것은 우리 회사에 손해가 난다는 뜻이기도 해-라는, 기가 막혀서 반응도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이준 회장에게 제대로 빈정이 상했다. 저녁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건물이 형체도 남기지 않고 무너졌을 때 그곳에는 저녁을 하기 위해 장을 보던 주부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소중한 누군가에게 먹일 따뜻한 밥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러 온 사람들. 회사며 손해며 말하는 저 작자도 분명 밥은 먹고 자랐을 텐데.


김상욱 교수님이 ‘하인리히 법칙’에 대해 말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전조 증상은 분명히 있었다. 기둥 주변이 깨지고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건물 자체가 기울기도 했다. ‘하인리히 법칙’은 큰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 300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큰 사고에는 반드시 전조 증상이 따른다. 프로그램을 본 이후에도 계속 전조 증상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정말 닮고 싶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있더라”와 같은 대화를 나누다가 전조 증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스스로 세웠던 ‘사람’ 혹은 ‘좋은 어른’의 최소한의 기준이 무너지기까지 과연 나에게는 전조 증상이 없었을까. 분명 그것을 보고 머릿속에 입력하고 말이나 행동으로 출력한 것은 나인데 그 모든 과정 중에 정말 전조 증상이 없었을까. 한 사람의 성품이 무너지고, 인성이 무너지고,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책임과 민감한 마음을 잃어버리는 과정에는 반드시 전조 증상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전조 증상이 없었을까?”라는 질문에 “지금 그게 전조 증상일 수도 있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큰 재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다. 정말 큰 재해라면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지경일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어 나에게 이런 행동과 생각이 튀어나왔는지, 그 과정을 되짚는 행위 자체가 회복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은 큰 재해가 아니라 29번의 작은 재해나 300번의 경미한 사고 중 하나다. 1번째 사고든 100번째 사고든 299번째 사고든 전조 증상에는 분명히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 운영진도 전조 증상을 느꼈고 그것을 마냥 무시하지는 않았다. 무언가 행동하기는 했다. 싱크홀이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는 가림막으로 급급하게 가렸고 건물이 기울어 곧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4층에 있던 값비싼 보석들을 먼저 탈출시켰다. 그들이 너무 둔해서 전조 증상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느꼈고 분명히 액션을 취했다. 그런데 그 액션이 사람이기를 포기한 액션이었을 뿐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게서 발견한 전조 증상에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 것인가.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에게 빈정상해서 마냥 자괴감에 빠져 있기도 싫다. 다행히도 무너지기 전에 발견한 싱크홀들을 글을 통해 정성껏 메워본다. 보수 공사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건물 보수 공사는 예상 기간이 딱딱 나오던데 인성 보수 공사는 당최 기간을 알 수가 없다. 자신도 없다.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까? 또다시 경미한 사고나 작은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래도, 300번 이상 반복되더라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빈정상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고 행동이고 마음이고 생각을 부지런히 돌아보며 보수한다.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는 방법밖에 없다. 정신 바짝 차리자. 스스로를, 주변을 무너트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위로는 '전조 증상'이다. 두려워도 스스로를 보수 공사할 수 있도록 용기를 갖기 위해 나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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