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맥락 읽기
한 사람의 삶의 맥락은 다양하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니 임신을 결심하기까지 짚어왔던 나의 삶의 맥락을 모두 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러니 그 가운데 가장 큰 맥락 두 가지 정도만 정리해보려고 한다.
임신을 고민하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나는 객관적으로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이유가 임신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낳아 기르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좋아하나 딩크의 삶을 결정한 사람도 있고, 아이를 좋아하지 않으나 좋은 엄마가 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다만 스스로를 향한 나의 첫 질문이 “너는 아이를 좋아하니?”였을 뿐이다.
나는 4남매의 첫째인 여자다. 둘째와는 1살 차이, 셋째와는 8살 차이, 넷째와는 12살 차이가 난다. 이 사실은 결국 내가 태어나 성장하는 내내 ‘아기’라는 존재와 함께였음을 뜻한다. ‘함께’라는 단어가 매우 아름다워 보이나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둘째와는 연년생이라 서로 성장하느라 바빴다고 치지만, 셋째와 막내를 맞이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과 감수성을 지닌 내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에 이제 막 태어나 누군가의 손이 반드시 필요한 한 아기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손’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는 다복한 다둥이 가정의 착한 맏딸처럼 심성 좋게 어머니를 도와 육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아니다. 반항도 하고 육아를 피해 도망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집에서는 컴퓨터를 할 때마다,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동생과 놀거나 혼자 책을 읽을 때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는 그로 인한 부정적인 기억들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기가 우는데도 돌보지 않았다고 혼났던 일이나(한 번 집중하면 주변 소리가 잘 안 들리는 편이다;) 혼자 코코아를 타먹겠다고 전기포트를 만지던 동생이 화상을 입었을 때 집에 있던 ‘큰 아이’인 내가 혼났던 일. 하나하나 열거하기엔 이제는 어렴풋한 그런 기억들 가운데는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억울함’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들이 가득했다.
동생들 뿐만 아니었다. 나의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유치원 교사, 나이가 들어서는 아이돌보미를 하며 오랜 기간 ‘아기’ 또는 ‘어린이’라는 존재를 케어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분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우리 집 아기와 어린이뿐만 아니라 남의 집 아기와 어린이까지도 나의 삶의 반경에 가득했다. 돌이켜보면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가도 버거웠고, 힘들었다가도 알 수 없는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나의 이와 같은 삶의 맥락을 되짚어보며 깨달은 사실은, 나는 아이를 좋아는 하지만 양육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체감한 사람, 그것의 힘듦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임신과 출산을 내 삶의 바깥 영역에 위치시켰던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이 내 삶 안에 ‘임신’과 ‘출산’을 들이기 위해서는 자라는 내내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양육’을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결심이 먼저 서야 했다.
결혼 후 4년 차까지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라는 개인이 그렇게까지 성숙하지 못해 나를 넘어 배우자를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두 사람이 한 호흡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정의 시스템을 세우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인과 가정이 다방면으로 안정기에 들어서는데 약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밀린 숙제를 하듯 그동안 미뤄왔던 임신과 출산에 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결혼 1년 차, 20대 중반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임신과 출산, 양육을 결혼 5년 차, 30대가 되어서는 어쩐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아주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임신을 고민하며 했던 또 다른 생각은 “나의 중년을 상상해 보자”는 것이었다. 장난스레 가볍게 그려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성향과 성격을 근거로 50-60대가 되었을 때 내 삶이 어떨까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스스로 나의 성향과 성격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엄마를 닮아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오지랖이 넓다. 음식을 넉넉히 한 날이면 아파트에 가깝게 지내는 워킹맘 가정, 할머니 혼자 사시는 가정, 경비 아저씨 등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눠줘야 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돌보면서 힘들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녀 시절부터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돌보는 교사로 일을 했고, 가정 안에서 네 자녀를 돌봤고, 지금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네 명의 자녀 중 그런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게 사람에 대한 오지랖이 넓은 편이다.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더 세심한 성격에 완벽주의 기질까지 더해져 누군가의 필요를 빠르게 알아채고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고 고민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돕고 돌보는 일에 힘을 쏟다 가끔은 서운하고 마음이 지치기도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그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나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이나 약자를 그저 방치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동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 성격이다. 또 누군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어려워하면 그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또 어떤 정보를 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이런 나의 오지랖은 어느 곳에서나 드러난다. 갓 서른이 넘은 지금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속한 공동체 어디에서든 자처해서 누군가를 케어한다.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나의 전공이 나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것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매우 즐거웠다. 목회자가 된 현재, 나는 목회자가 ‘돌봄’을 제공하는 중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영적으로 돌보고 더 나아가 전인격적으로 돌보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목회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돌봄에 관한 윤리를 배워야 하지 않는가 혼자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이 모든 맥락 속에서 스스로를 ‘돌봄의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엄마가 청년 시절부터 환갑이 된 지금까지 계속 누군가를 돌봐왔듯, 나 또한 그러리라고 확신한다.
내 나이 40이 되어서도,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도 나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아기를 낳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누군가를 계속 돌볼 것이다. 평생 피가 섞이지 않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돌보는데 에너지를 사용할 텐데, 그렇다면 어차피 사용할 그 에너지를 나의 아기를 돌보는 데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년의 내가 외로울 것 같았다.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쩐지 나의 아이가 있었으면 좋았으리라는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꼭 후회하고 있을 것 같은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늘 사람들과 복닥복닥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나의 아이가 없이 중년의 나이를 행복하게 지날 수 있을까? 주변에 아이를 낳은 가정들을 부러워하며 내 삶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지금의 나의 자존감과 나의 커리어와 나의 삶을 위해 내린 결정으로 인해 중년의 나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중년의 나의 커리어가 더 이상 의미 없어지며, 중년의 나의 삶이 외로워지지는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마음속으로 고민하던 문제의 답안지가 어느 정도 작성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아기를 낳고 그 아기와 함께 사는 삶을 행복해할 사람이었다. 다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인 데다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에 삶을 통째로 뒤흔들만한 그 일에 자신감이 없었을 뿐이었다. 긴 고민 속에서 천천히 한 자락씩 자신감이 쌓여갔고 결국 나의 삶 속에 ’ 임신‘과 ’ 출산‘을, 더 나아가 ’ 아기‘라는 존재를 들여놓을 수 있었다.
내가 긴 시간 동안 나의 삶의 맥락을 읽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까운 이들 덕분이다. 손주가 보고 싶어 애가 닳지만 나를 재촉하지 않으셨던 양가 부모님, 그리고 나의 선택을 우선으로 여겨준 남편이 그 시간을 기다려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나를 재촉하거나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 생각이 드는 말과 행동을 연거푸 일삼았다면 나는 이 작업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은 한 여성의 삶의 방향을 극단적으로 틀어버릴 수 있는 큰 일이다. 당사자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당사자의 삶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의 성화와 압력으로 인해 그저 물 흐르듯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를 통해 태어날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도 여성의 마음과 삶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야 새로운 생명이 기쁨과 축복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긴 시간 자신의 삶의 맥락을 읽으며 내린 삶의 중요한 결정에, 아무리 가까운 타인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임신과 출산을 받아들이는 결정이든 그 반대의 결정이든 말이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자신의 삶을 샅샅이 돌아보며 쌓아 온 시간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자신을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한 생명에 관하여 가장 오랜 시간 상상하고 생각하고 그려보는 사람이 바로 여성 자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그것의 달콤함도 씁쓸함도 오로지 내 책임이다.
- <밤의 사색>(헤르만 헤세, 반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