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21일, 살아보는 여행의 기록
기상 시각이 조금씩 늦춰지는 것 보니 시차에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것 같다. 9시 경에 일어났다. 그리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또 잤다.
오늘은 조금 더 로컬스러운 음식을 먹어보자고 다짐했는데, 너무 로컬하게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어버렸다. 자고 일어나니까 타일 워크샵 수업 시간에 가까워져서 집에 있는 음식으로 대충 떼웠다. 포르투갈에서 먹어보는 신라면의 맛이란. 햇반과 고추장. 사랑스러웠다.
밥을 먹고 타일 워크샵 하는 곳으로 우버타고 이동했다. 초행길이고 버스로만 갈 수 있어서, 시간 맞춰 가기 위해서 또 우버를 잡았다. 이것도 맛들이면 안되는데. 포르투에 도착한 지 6일 째. 연달아 날씨가 엄청 좋다. 겨울의 포르투는 우기라서 우중충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는데. 쨍쨍한 날씨만 봐서 흐린 날이 잘 상상이 안 될 정도다.
타일 만들기 워크샵. 도자기 공방 같은 곳이었고, 하얀 공간에 볕이 너무 잘 들었다. 사진을 연달아 찍었다. 어머님 아버지분들이 옆에서 열심히 수다 떨면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고, 옆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수다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느긋하게 삶을 즐기고 있는 모습같아 보였다. 현지인의 삶으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본 느낌. 관광지와 조금 떨어진 포르투 어딘가에서 처음 겪는 낯선 기분이었다.
여행와서 무언가에 집중해서 작업을 해보다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패턴을 다 그리고나서, 울퉁불퉁한 부분들을 부드럽게 정리하는건 마지막에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바깥쪽 동그라미 4개의 형태가 revolutionary 한 것이 내 의도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면 그대로 두겠다고. 작가의 세심한 의도까지 신경써주시는 모습에서 디테일이 느껴졌다. 아티스트 느낌이 물씬.
보통은 여행기간이 짧아서 결과물을 해외 우편으로 받는다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다음 주에 공방에 한 번 더 방문해서 유약 바르고 색칠까지 하기로 했다. 내가 만든 타일을 직접 내 손으로 완성해서 가져갈 수 있다니.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행 기념품을 집에 가져갈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특별한 경험!
Brâmica
R. Santo Isidro 181, 4000-075 Porto
수업 장소가 중심부와 조금 떨어진 낯선 동네기 때문에, 여기서 로컬 음식을 먹으면 되겠다! 고 생각했으나, 용기가 없었던건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결국 중심부까지 가버렸다. 사진은 길가다가 만난 이쁜 장난감 가게. 들어가볼까 하다가 말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재즈 버스킹. 톰 미쉬 기타 느낌이 났다. 포르투에서 꽂히는 길거리 버스킹이 잘 없었는데, 이번엔 몸이 찌릿찌릿했다. 그래서 1유로 주고 가만히 서서 몇 곡 듣다가 자리를 떴다. 에그타르트도 같이 먹었는데 저번에 먹은 에그타르트보다 훨씬 더 맛있더라.
Bolhão 역 근처 어딘가
4000-124 Porto
Fábrica da Nata
Rua de Santa Catarina 331/335, 4000-451 Porto
원래는 Curb라는 버거 가게에 가려했는데, 문 닫아서 다른 가게로 향했다. 가로수길 브루클린 버거 생각나는 맛. 대 존맛. 가격도 적당한 편. 맥주는 그냥 먹었을 땐 그저 그랬는데, 버거와의 조합이 괜찮았다.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맥주.
DeGema Hamburgueria Artesanal
Rua do Almada 249, 4050-038 Porto
어제 갔던 굴덴드락 브루마스터에 또 가고싶어졌다. 문 열고 들어갔더니, 어제 젠틀하게 서빙해줬던 삼촌이 welcome back! 하고 나를 반겨줬다. 어제 너무 좋아서 또 왔다고했더니, 여기가 "the best beer place in porto" 라며 자부심을 뿜뿜 내비치셨다.
오늘은 혼자니까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한국에서 먹어보고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서, embrasse를 또 시킴. 벨기에 맥주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신논현에서는 꽤 비싸게 주고 먹었던 것 같은데, 여긴 만원 초반 대. 엄청 싼 가격은 아니지만 한국보단 싼 편이 확실해. 맥주에서 위스키향나는게 좋다. 위스키향이 나면서 끝엔 초콜릿향도 살짝 난다. 기분 좋게 마셨다.
한 잔 더 먹고 싶어서 추천을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embrasse 다음으로 먹기 좋은 맥주라며 테이스팅까지 도와주셨다. GULDEN DRAAK BREWMASTER. 똑같이 위스키향이 났는데, 조금 더 깔끔하게 가볍고 과일향이 났다. 탭에서 바로 나온 맥주인데 신선하더라. 여기 맥주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 very good을 외치며 주문했다.
펍에 앉아서 포르투갈어 공부를 조금 더 했다. 그리고 계산하고 나갈 때 포르투갈말로 "sinto Obrigado, I'm learning Portuguese"라고 얘기했다. "thank you very much" 라고 말하려 했는데 "Sorry, Thank you"라고 얘기한걸 집에 와서 알아버렸다. 어쩐지 당황해하면서 한국말을 못해서 내가 더 미안하다고 얘기하더라. 다음 번엔 꼭 제대로 인사하고 나와야지! muito Obrigado!
Gulden Draak Bierhuis Porto
N. 82, Rua de José Falcão, 4050-315 Porto
집 가는 길 지하철에서 만난 댕댕이. 주인이랑 닮았음.
지금까지 한 도시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이 곳에서 지내는게 재밌어질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가야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는게 참 재미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집까지 가는 길이 이젠 제법 익숙하다. 지도 없이 집까지 잘 걸어가더라. 편안한 느낌이 드니까 재밌고 신이 났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고, 2주라는 시간이 남았다. 별로 할 게 없다고들 말하는 포르투에서 3주를 보내는게 처음엔 살짝 두렵기도 했다. 심심하고 지겨울까봐. 근데 전혀 그렇지 않아보인다. 서울 살이 6년을 해도 서울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말야. 오히려 3주면 온전하게 이 도시를 다 느끼기엔 사실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남은 2주도 잘 부탁해, Porto.
1월 15일(화) 84,462원 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