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엄마

가을 조아름 2019 다섯 번째

by 피츠로이 Fitzroy

나는 남편에게 제일 못 되게 굴고, 남편이랑 있을 때 가장 많이 웃는다. 남편과 함께 산지 5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남편은 우리 아빠나 내 동생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안다. 내 표정만 보고도 배가 부른 지, 화장실이 가고 싶은 건지 알 수 있다.
그러다 문득 엄마는 누구랑 있을 때 가장 많이 웃었을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일단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미소 짓던 얼굴은 생각이 나도
내 앞에서 소리 내어 깔깔거리고 웃던 모습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남편이랑 정말 실없는 주제로 어처구니없게 하하하 거리는 것 같은, 혹은 영화 ‘와일드’에 나온 주인공의 엄마처럼 실성한 것처럼 신명 나게 웃는 것 같은. 우리 엄마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나 마음이 쓰이고 만다.


영화 ‘와일드’는 이서희 작가의 ‘구체적 사랑’이란 책에서 언급됐고, 이 책은 진주의 추천으로 읽게 됐다. (진주의 책 선물은 늘 옳다. 허접한 책은 권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주인공의 엄마 모습이었는데, 엄마는 지나치게 밝고 늘 신나 있었다. 기쁜 듯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처음에 살짝 보곤 음, 엄마가 좀 미친 사람인가 판단했을 정도. 주인공이 엄마에게 못 된 말을 내뱉어도, 학교에서 만난 엄마를 모른 척 해도 그녀는 항상 다정했다. 술 먹은 남편이 때려서 도망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의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 엄마였던 사람과 나와 그리고 나에게 생길(지 어쩔지 모를) 자식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나도 저렇게 웃으며 살고 싶다. 맨날 다 같이 노래 부르고 시끄럽게 깔깔 거리며 살고 싶다. 엄마랑 내가 못 했으니 내가 엄마가 되어 자식이랑 하며 살고 싶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다.
따뜻한 캐러멜 마키아토 톨 사이즈 두유로 바꿔서 지금 너무 마시러 가고 싶은데 같이 가줘, 하고 아이에게 조른다.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학교에 오면 창피해서 모른 척하고 지나갔던 적 있는데 네가 혹시 그래도 엄마는 서운해 안 할게. 엄마가 한 짓이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
지금 랍스터 사 먹을 돈은 없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너랑 이야기할 수 있는 이 10분이 너무 좋아, 하고 안아준다.
이 세 가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시끄럽고 시원하게 웃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 주인공 엄마보다 더 미친것처럼 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노력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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