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by 피츠로이 Fitzroy

오늘이 두 번째 날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사는 나를 네 번에 걸쳐 보자 했고, 이 상담의 목표를 정하고, 우리가 마지막 회차에 만날 때는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해 보자 했다. 어쩐지 학교 다닐 때의 큰 숙제처럼 느껴지는 목표 설정과 결과 도출에 대한 부담감에, 겨우 한 번 마친 이 상담을 캔슬 해 버릴까 몇 번 고민했다.

두 번째 만나 이야기가 시작된 지 10분쯤 지났을까, 상담사는 내게 내가 상담사를 찾아가야 했던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아빠와의 관계가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 둘의 관계에서 나 혼자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했다. 이 짐은, 내가 아빠의 딸이기 때문에, 딸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불효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저는 선생님, 완벽한 가족을 항상 꿈꿔왔던 것 같아요. 완벽한 관계, 완벽한 딸이 되기 위해 지금껏 노력해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내뱉은 이 문장이 너무 슬펐다. 대체 완벽이 뭐지. 이 완벽하지 않은 구성원이 모여 완벽한 가족을, 완벽한 관계를 만들려고 그 ‘힘든(혹은 헛된)’ 노력을 했나. 그런 생각이 갑자기 확 몰려와 목이 멨다.

선생님이 갑자기 목표 설정을 다시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나에게 묻는다.

“아빠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목표로 잡고 싶으세요?” 내가 싫은 그 숙제 이야기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단 한 가지만이라도 싫은 것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절대로 아빠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거란 걸. 37년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아빠가 먼저 물어 온 적도 없지만 나도 말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나는 뭘 싫어하는지. 나는 아빠가 뭘 했으면 좋겠는지, 뭘 안 했으면 좋겠는지. 내가 아빠에게 이것까지 해줄 수 있겠는지, 아니면 없겠는지.

그래서 나름 꼼수를 부려본다. 말로 못 꺼낼 것 같으면 글로 써보자고. 말보다 글이 좀 더 나은 편이니까. 아빠 앞에서만 서면, 말이 나오기 전에 눈물부터 나오는 게 나니까.

이런 용기가 어디서 났냐면, 오늘 났다. 오늘 마지막에 선생님이 그랬다.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완벽한 관계 같은 건 정말 없다고. 당신이 제일 걱정하는 그것, 딸이 돼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것, 그것은 세상이 무너질 만큼 큰일이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읽히고 싫은 요량으로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내가 지금까지 아빠에게 한 번도 전하지 못했던 나의 진심들을.



9살 부부싸움


가족 모두 함께 오늘 밤을 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를 9살에 처음 느꼈다. 물건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아빠의 고성과 엄마의 비명, 흐느껴 우는 소리, 물건이 떨어지고 깨지는 소리 등을 들으며 안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상했고, 이 싸움으로 누군가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빠졌다.

엄마와 아빠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싸웠고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죽음의 위기로 내몰렸다. 어느 날은 말려 보겠다는 생각으로 발끝에 있는 용기까지 그러 모아 방문을 살짝 열었다. 바로 코앞에 거인처럼 큰 몸뚱이가 문 앞을 떡 버티고 있었다. 아빠였다.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였다. 아니 3미터. 얼굴을 찾아 끝도 없이 올려다보니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소스라치게 섬뜩했다.

“들어가.”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그 후로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절대 내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가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아빠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된 것은.

나는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파고 파고 더 들어가 정가운데, 가장 깊숙한 부분이다 생각하고 멈추니 내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동생이 있었다. 동생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귀를 막고 있었다.

“손을 이렇게 모아봐, 누나 하는 거 봐.”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제발 누구든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아빠랑 엄마가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가 엄마 때리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랑 엄마가 물건을 던지지 않게 해 주세요.

칼로 찔러 죽이지 않게 해 주세요.

집에 불을 질러 죽이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서로 죽이지 않게 해 주세요.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기도를 멈추면 영원히 싸움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고, 기도를 멈추면 모두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끝까지 “누나 무섭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그냥 누나랑 둘이 살자.”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앉혀 놓고 자주 물었다.

“난 네 아빠랑 못 살겠다. 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넌 아빠 딸이니까 아빠랑 살 거냐?”

마음이 벼랑 끝에 가 앉았다. 단지 내가 궁금한 건 둘이 낳았으면서 내가 왜 아빠 딸인 건지,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안 살고 동생이랑 둘이 살겠다 하면 뭐라 할 건지, 그러니까 그건 대답을 원하는 질문인 건지. 결국 한 번도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꿈을 꾸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싸움이 깊어졌고 반항하는 자기를 침대 묶어 놓고 때렸다고. 그런데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게 엄마 편 한 번을 안 든다고, 나와서 말리는 꼴을 못 봤다고. 가슴에서 큰 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기도를 했다. 엄마랑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아빠가 엄마 때리지 않게 해 달라고. 물건을 던지지 않게 해 달라고. 칼로 찔러 죽이지 않게 해 달라고. 집에 불을 지르지 않게 해 달라고. 제발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가 습관이 되어,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 날에도 똑같은 기도를 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매일 같은 내용의 기도가 입에서 줄줄 나왔고, 기도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한 듯 잠이 들었다. 그렇게 9살을 보냈다.




9살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젠가 쓴 글이다. 나는 이때부터 이미 아빠가 무서웠다.

그러나 실은 아빠와 너무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 바로 나다.

다가가기 힘들고 어렵기만 한 아빠가 아니라, 친구같이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이 지금도 나의 목표이다.

아빠와 다정하게 자주 통화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아는 후배 중 한 명이다. 회사에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와 통화하는 데, 주변에 앉은 동료들은 남자 친구랑 통화하는 줄 알았다고 했단다. 하도 툴툴거리길래 “남자 친구한테 상냥하게 좀 하지”라는 이야기도 들었단다. 아빠에게 심통 내고 투정 부릴 수 있는 그녀가 한없이 부러웠었다.

나도 아빠와 그런 관계가 되기 위해선, 먼저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에 대한 감정을 숨김없이 말하고, 알리고, 이렇게 한 번 크게 부딪힌 다음에야 변할 수 있다고.

그렇지만 이걸 쓰면서도 여전히 걱정되는 한 가지는, 이렇게 (뒤늦게야) 나의 본심을 알고 난 아빠가 크나큰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혹여나 이 일로 자신을 비관하며 나쁜 마음을 먹지나 않을까, 그런 것들이다. 역시나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나는 그런 사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아빠 앞에 서면, 싫은 내색 안 하는 (착한 척하는) 딸이었지만, 실은 내 속에서 아빠에 대한 증오심을 키운 지 꽤 오래되었다. 아빠 때문에 술을 먹고 다닌 지, 친구들에게 아빠 욕을 하고 다닌 지 한 10년쯤 되었고, 동생과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며 같이 한숨을 쉰지는 5년쯤 되었다. 그래서 왜 한 번도 본인에게는 직접 말하지 않고, 혼자 미워하고, 친구들과 미워하고, 남매가 합세해서 미워했냐고 물으면, 나는 애초에 아빠에게 내 의견을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 답하겠다. 아빠가 시키는 걸 하고, 말하는 걸 듣고는 했지만, 내 쪽에서 내 생각을 말하고, 내가 원하는 걸 말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빠는 그저 어렵고 무서운 상대였고, 아빠가 하는 생각과 말에 반대되는 것은 속으로 삼키는 일은 있어도, 절대로 밖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두 번째 이유도 있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아빠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엄마가 떠난 것에 대해 내가 해줄 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또 미안해 아빠가 원하는 대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내버려 두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37살이 되어서도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크니 줄여달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해 속으로만 앓는다.


어렸을 적 아빠는 안된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에게 반말하지 마라, 차 타고 어디 갈 때는 창문 내리지 마라, 텔레비전 채널 돌리지 마라, 이런저런 금기 조항만 단호하게 내뱉는 혼만 내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그런 짧고 권위적인 말투는 지금도 가끔 나온다. 항상 우리를 아래에 두고, 명령을 하고 지시를 한다. 특히나 남동생에게는 더욱 심하다. 아빠 앞에만 서면 긴장하고 주눅이 드는 동생을 발견해 주면 좋겠다. 나는 보이는데 왜 아빠 눈에는 안 보이는 걸까. 잔뜩 움츠려진 어깨와 또렷하게 내뱉지 못하고 안에서 뭉그러지는 자신감 없는 말소리를.

역까지 마중 나오는 아빠의 차를 제시간에, 올바른 장소에서 타기 위해 30분 전부터 긴장하고 마는 우리를 아빠는 모른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조금이라도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면 큰 소리가 난다는 것을 오래전에 배우고 익혔다.

우리가 얼마나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인지 알아주면 좋겠다. 우리가 원했던 건, 가르치려고만 하는 아빠가 아니라 언제든 내 편일 것 같은 다정한 아빠였다. 자식과 부모는 평등한 사이가 될 수 없고, 아빠니깐 자식들에게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고, 자식은 응당 아빠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아빠의 옛 사고방식이 오랜 시간 우리를 외롭게 만들었다.


아빠의 운전은 난폭하고 배려가 없었다. 과속을 하고, 칼치기를 하고, 남의 운전에 끊임없이 간섭하고 욕하고, 클랙션을 마구 울려댔다. 옆에 있는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이 아빠의 운전에 대해 한 마디씩 했지만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게 나와 동생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지적에도 아빠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고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초연해지기 위해, 혹은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다리에 힘을 꽉 주기도 하고, 일부러 잠을 청해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예 초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 죽기밖에 더하겠냐, 다 같이 죽자, 죽어.

“혼자 저러고 다니면 아무도 뭐라 안 해. 그런데 저러다 사고라도 나서 같이 탄 사람이 잘 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남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거지. 차에 탄 사람의 배려심 따위 없는 거야. 이기적인 거라고.”

나는 몇 번이고 상상을 하고 만다. 아빠가 차 사고로 죽는 장면을. 그리고 현실로 돌아오면 제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아빠가 지금껏 큰 사고가 없었던 건, 아빠의 운전이 정말 훌륭하거나, 아니면 나의 효심 가득한 기도를 누군가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오랜 시간 판매직에서 일하고 있다. 밝은 표정과 예쁜 미소로 친절하게 고객을 대하는 것이 나의 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도 있고, 매너 없고 무례한 사람도 있다. 웃는 것과 친절을 베푸는 것을 누구보다 잘한다고 믿고 있는 나보다 더 친절한 고객들을 만나면,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아빠가 나의 고객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가 보이는 행동은 내가 일하며 만난 고객 중 가장 싫은 부류로 분류된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직원에게 함부로 말하고, 마트의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며 직원에게 직접 돈을 건네지 않고 바닥에 툭 던진다. 나는 그런 모습을 꼭 지적하고 싶었다. 아빠가 낮게 대우하는 저 직원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고, 아빠가 좀 더 친절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역시 말로는 나오지 않는다.


나와 동생은 아빠의 자식이란 이유로 아빠 대신 참 많은 것들의 주인이 되었다. 유선 전화, 핸드폰, 인터넷, 자동차, 집 등 내가 쓰지 않고,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내 이름으로 계약되었고, 내 신분증 같은 건 진작부터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다. 아빠가 나와 동생의 명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에 대해 자식이니까 부모가 힘들 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이해를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자꾸 우리 앞으로 날아오는 독촉장을 노려보고 있다 보면, 이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 태어나길 잘 못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금을 제때 내는 아빠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었던 우리 탓이구나. 왜 남의 명의를 쓰면서 제때 돈을 납부하지 않는 건지, 뭘 압류한다 어쩌고 저쩌고 기분 나쁜 문장들을 도대체 왜 읽고 있어야 하는지 우울감만 증폭됐다. 살면서 요금을 내는 일은 아빠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하위인 듯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체납자가 되어 회사로 걸려오는 경찰의 전화 같은 것도 받아야 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기복이 심한 아빠의 사업과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우리 집. 월세 독촉 전화를 받던 아빠의 등과, 어느 캐피털 회사에서 날아온 두툼한 봉투가 꽂힌 우체통. 그런 것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아빠의 마음은 오죽할까 딱한 마음도 늘 한편에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생각하며 내 쪽에선 호의를 베푼답시고 하고 싶은 말들을 못 뱉고 담고만 살았는데, 아빠에겐 그게 호의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당당히 요구하고 우리의 의견 같은 건 묻지 않았다.

각자의 체납 고지서와 독촉장을 들고 만난 나와 동생은 소주를 마시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아빠를 멈출 수 없었다.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아빠한테 그만하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남매. 아빠가 하는 일에 토 다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남매. 우린 그런 남매라는 걸.


친구들에게 아빠 욕을 실컷 한 날은, 친구들은 “이 답답아, 말을 해, 그거 싫다고.”라며 언짢아했고, 나는 나대로 나를 낳아준 부모를 욕하고 다니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아 갑자기 언짢아지곤 했다.

내 안에서 미워하고 욕하고 증오하는 일을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다. 싫어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로 한 일이란 걸 느낀다.

이제는 아닌 건 아니라고 아빠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나이고 싶다. 나는 살면서 몸도 커지고, 생각도 커지고, 힘도 커졌는데 아빠 앞에서 서면 항상 9살짜리 꼬맹이가 되어버린다. 아빠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던 작았던 나.


‘아빠’에서 ‘아버지’로 호칭을 바꾸면 사이가 더 멀어지는 느낌이 날 거 란걸 미리 알았다면 계속 ‘아빠’라고 불렀을 텐데 후회하고 있다. 아빠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살기 시작하면서 호칭을 바꿨다. 아빠는 아버지로 부르고, 아줌마는 어머니로 부르자고. 내가 엄마라고 불렀던 그 한 사람을 호칭에서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아빠로 부르고 싶다. 아줌마가 떠나서도 아니고, 아빠로 부르면 아빠랑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노력하고 싶다. 아빠와 가까운 사이가 되기를. 아빠에게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아빠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자식이 되기를.


아빠가 무서웠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 날 수 없어도, 아빠의 운전이 마음에 안 들어도, 아빠의 급한 성격과 큰 목소리와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단점을 알고 있어도, 아빠가 미루고 미루는 세금을 떠안고 있어도, 그래도 나는 아빠와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나만 아는 아빠의 다른 좋은 점들을 칭찬하고, 존경한다고 말해주면서 살고 싶다.

내가 이만큼 용기를 낸 것이 오랜 시간이 걸린 꽤나 힘들었던 일인 것만큼, 아빠가 갑작스럽게 이런 나의 글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다릴 수 있다. 원망에서 이해로 받아 줄 수 있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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