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형(하)

by 피츠로이 Fitzroy

(상편에서 이어짐)

W는 남자를 향한 분노 가득한 나의 욕지거리를 시도 때도 들어주느라 매우 바빴다. 일본 가수 soul’d out의 음악을 틀어주며 가끔은 나를 진정시켰다. 또 흥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춤을 춰야 하니까.

달이 밝았던 어느 밤 술을 깨려고 뒷마당에 나와 잔디 위에 풀썩 앉았는데, 따라 나온 W가 갑자기 내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댔다. 취했는지 또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뭐지, 얘는. 그리고 2016년 4월 우리는 혼인신고를 하고 있었다.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W는 지금 우리 집에 살고 있다. 야라빌(Yarraville)의 쥐가 나오던 집에 살 때는 다라코라는 (길)고양이를 데려와 쥐를 잡아 주더니, 하남에 있는 행복주택에서는 난코츠라는 (유기묘)고양이를 데려와 먹이고 재운다. 이 아이는 쥐도 못 잡는데 말이다.

저녁에는 내가 먹을 밥을 준비해 놓고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한다. 티셔츠가 말려 올라가면서 허연 배가 삼분의 일쯤 드러난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이상형은 절대 배 나온 남자가 아니었다. 유치원 때 이후로 인생에서 마른 적이 없었다는 W는 아니단 말이다. 코로나를 빌미로 3개월째 하남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는 집순이를 남편으로 들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W도 내가 입까지 벌리고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암, 이 사람은 절대 내 이상형이 아니지 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본인보다 손과 발이 큰 여자를 아내로 들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 그리고 담배. 담배 좀 내놔보라 하는 여자는 더더욱 이상형이 될 수 없었을 거다. 내가 예전에 담배 빌려 달라할 때마다 삥 뜯기는 거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결혼이란 걸 했을까.

“나한테 잘 보이려고 못 마시는 술 막 마시고, 뭐 그랬던 거 아냐? 솔직히 말해봐.”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W에게 추궁을 해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너의 그 이상한 마른 친구는 아직도 이상해?”

“응 여전히 이상해, 그리고 착해. 너무.”

그는 작지만 야무진 손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요리를 한다. 나는 두껍지만 튼튼한 허벅지 힘으로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같이 여행 갈 돈을 모은다. 그리고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같이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었네 하고 느끼며 산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상형이 뭔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맨날 내 턱이 길다고 놀리는 걸 봐선 W의 이상형은 턱이 짧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끝.

(저의 포스팅이 갑자기 끊기면 WADA상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생각해 주세요)




이전 19화나의 이상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