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는 UGG(어그) 매장에서 일했다. 우리 매장 출입문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 바로 맞은편에 중국 게이 남자가 운영하는 액세서리 가게가 보였고, 그 가게의 왼쪽에 어그 매장이 있었다. 매트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 같았는데 언제 언제 나오는지는 잘 몰랐다.
나를 고용한 싱가포르 부부는 하버타운 쇼핑센터에서 두 개의 매장을 운영했는데, 나는 영캐주얼 브랜드의 매장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부부는 나를 에슬레져룩이나 운동화를 파는 또 다른 매장에서 계속 일을 시켰다. 갑자기 부부에게 아기가 생기자, 일주일 내내 혼자 매장을 오픈하고 혼자 마감하는 일도 생겼다.
평일 매장은 매우 한가하기 때문에 나는 일본어 공부를 하거나 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지금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가요를 들었다. 부부는 내게 매장에서 팝 외에 다른 나라 음악은 틀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아이유의 ‘너랑 나’를 질리도록 들었다. 도입부의 웅장함이 좋았다.
매트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도 따분하다는 듯 자주 거리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매트는 누가 보기에도 딱 Aussie(호주 사람)였고 내가 만났던 대부분은 오지는 나와 대화할 때면 (나를 배려해선지 뭔지 모르지만) 말의 속도를 천천히 늦혀 주거나 알기 쉬운 말을 골라 써줬다. 그런데 매트는 달랐다. 말을 너무 빨리 했다. 슬랭인지 뭔지 모르겠는 말들이 속사포처럼 지나갔다. 나는 지금 타국의 아시아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라는 의식 없이 방금 같이 합주하고 온 학교 밴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 친근하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입술의 움직임과 손짓, 표정이 살가웠다. 나는 그때 파란색 레깅스에 빨간색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이상한 애였는데 말이다.
매트는 기타를 쳤다. 대학생이었다. 학교는 재미없고 무리카미 하루키는 좋다고 했다. 내게 대뜸 요즘 무슨 책을 읽냐고 해서 갑자기 무리카미를 말했던 것이다. 그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 매장 앞에 서서 그와 잠깐 이야기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외롭고 겉도는, 타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그냥 이 나라 이 사람들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지도, 반갑게 안녕? 하고 인사해 주지도 않았다. 시선을 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까도 본 친구처럼 고개를 살짝 들었다 내려놓곤 문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팔짱을 끼고 “요새 어때?”라고 시크하게 말했다. 와아 얘 나 친구로 생각하나 봐, 어색하고 어려운 기색이 하나도 없네. 묘하게 기뻤다. 몇 달만 지나면 난 서른이 되는데 말이다.
안 되는 영어로 열심히 근황을 이야기하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조차 모르는 지경에 자주 빠졌는데 그는 늘 성실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들어줬다.
어느 날은 내게 CD를 내밀었다. 일본 영화 ‘상실의 시대’가 들어 있었다. 너무 우울해서 한 번 보고 던져두었다. 매트는 착한 애네, 그 날 생각했다. CD를 받은 후로 매트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것 같았다. 어디에도 물어볼 곳이 없었다. 키가 크고 빨간 머리의 통통한 여자아이가 매트가 항상 서있던 자리에서 어슬렁거렸다.
한국으로의 귀국을 앞두고 차를 렌트 해 멜버른에서 시드니까지 여행을 했다. 시드니에 있는데 페이스 북을 통해 매트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 돌아가기 전에 한 번 꼭 만나자고. 나도 꼭 그러자 했다. 멜버른으로 다시 돌아온 후, 이틀 만에 나는 귀국했다. 매트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페이스북에 한국에 돌아온 것은 포스팅 하지 못 했다. 그가 구워준 영화 CD는 잘 챙겨 왔다. 내 방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5월은 좀 그렇다. 나는 5월이 되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오늘은 매트를 생각했다. 매트는 기타리스트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도 2년 전의 페이스북 업데이트이니까 현재는 또 어떤지 모른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하남에서 비싼 냄비나 나이프 같은 걸 팔 줄 몰랐다. 여전히 무라카미의 에세이는 자주 읽으니 매트가 크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