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형(상)

by 피츠로이 Fitzroy


나의 이상형은 키 크고 마른 체형에 딱 붙는 검정 스키니진과 흰 티셔츠, 검은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2012년 2월, 여름의 마지막 기운이 조금 남아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일본인 8명, 한국인(나) 1명이 어울려 바닷가로 놀러 갔고 거기서 유난히 눈에 띄는 W를 보고, 와우 저런 애만 남자 친구로 안 만나면 돼 하고 생각했었다. 햇볕이 쨍쨍한 바닷가였는데 긴팔 셔츠에다가 얇은 카디건까지 걸치고 셔츠를 목까지 꼭 꼭 잠가 너무 불편해 보였다. 나는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녔다. W의 긴 바지는 바지 길이가 너무 길어 안 그래도 작은 키가 더욱 작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녔고, 바닷가까지 와서 물에도 들어가지 않고 점잔을 빼고 있는 그를 경멸의 마음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W의 옆에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것 같은 남자 애 하나가 꼭 붙어 다녔는데 키가 훌쩍 크고 빼빼 말라 우리 엄마가 자주 쓰던 말을 빌자면 피죽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애 같았다. 입술이 매우 건조해 보이고 입 양 끝쪽으로 허옇게 침이 말라 붙어 있었다. 와우 정반대인 이 둘의 조합은 뭐지. 이런 애들이랑만 안 친하게 지내면 돼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그들에게 꾸준히 담배를 빌렸는데 담배 값이 한국보다 비싸서 못 사고 있었던 건 아니고 끊으려고 노력하고자 안 들고 다녔는데 그들에겐 이상하게 담배 좀 달라는 말이 쉽게 나왔다.

시간이 흘러 나는 카페를 운영하던 중국인 친구의 소개로 아주 힙한 동네에 집 한 채를 통째로 렌트하게 되었다. 방이 세 개, 부엌, 앞마당, 뒷마당이 있을 만큼 근사한 집이었는데, 어느 날 쥐도 함께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쥐 때문에 무서워지자 같이 살 친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옆방에는 오토바이 샵에서 메카닉 일을 하는 아이가 들어오게 됐고, 그 옆방에는 멀리하고 싶었던 셔츠를 목까지 잠근 W가 이사를 왔다.

우리 셋은 줄곧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W는 술을 좋아하는지 와인, 맥주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집 근처 리큐르 샵에서 술을 사다 날랐다. 그때 나는 내 이상형과 조금 근접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다녔는데, 그 사람을 집에 데리고 와서 내 방에서 재운 날 W는 혼자서 위스키를 잔뜩 마시고 취해서는 히죽히죽 웃으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내 이상형과 살짝 근접했던 그 남자는 나에게 허벅지가 참 튼실하다 말했다. 그의 이상형은 하체가 날씬 한 사람이었는지 나에게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마음이 좋지 않았던 나는 매일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는데 그때 항상 내 옆엔 W가 있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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