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행복해져라 뿅!

봄 조아름 2020 두 번째

by 피츠로이 Fitzroy

내가 그와 헤어졌다고 했을 때 아빠랑 같이 살던 아줌마는 니가 그 남자를 천안 집에 데리고 와서 그런 거라고 했다.
니 아빠 사는 꼴을 보고 실망했을 거라고. 아줌마들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외양만 보고도 얼른 알아차리는 것. 집안의 환경이라던지, 어떻게 살아왔다던지.
외관은 누추하고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가파르고 화장실엔 지지 않는 묶은 때가 낀 집이었지만, 아줌마는 곳곳에 예쁜 꽃과 화분을 놓으며 남자친구가 오는 것에 꽤 신경을 썼었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우와 이런 집에 비데가 있어.”라고 놀라며 말했다. 그때 느꼈어야 했는데. 여기 데리고 온 건 실수였다는 것을.
누가 입은 건지 모를 찜질복을 속옷도 안 입은 채로 걸치는 게 꺼림칙하다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는 그를 찜질방에 데려갔다. 찜질복을 넷이 나란히 입고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처음 보는 아빠와 같은 목욕탕에 있는 게 불편할 거란 생각까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 채 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는데, 그 이유가 그러니까 그가 나와 더 이상 사귈 수 없는 이유가 내가 본인과 너무 다른, 돈 없는 집 딸이라서,라고 믿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 부족함이 내 모습 어딘가에 늘 붙어 있을 것 같아서, 아니 가슴팍에 새겨져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디선가 그를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늘 불안했다. 한국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결혼을 하고 하고 나서도, 길에서 조금만 비슷한 사람을 보면 심장이 돌연 자기 무게를 드러내며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내가 발각되고 만 것 같아서.

그런데 달라졌다. 나 왜 갑자기 당장 그를 만난다 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거지. 생각해 보니 내겐 더 이상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와 나를 옆에 놓고 쟤는 이만큼 가졌고 나는 이만큼 가졌으니 호오라 덜 가진 나는 불행한 사람! 하고 비교하는 걸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에 행복하고 감사하고 거저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나눌까 생각하며 살다 보니, 나는 못 가졌는데 남은 가진 무언가를 갈망하며 사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가난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다고.
오랫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 내가 내 안에 갇혀 그를 미워하고 또 미워했던 게, 그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너는 갑자기 득도를 했냐, 아님 없던 종교를 가졌냐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아니고, 못 가진 걸 합리화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하하.
나는 그냥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책 읽을 30분이 생겨서,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아침 똥을 내보낼 수 있어서, 잠깐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 온몸의 감각을 무지 즐기는 한 사람일 뿐.
아, 그리고 어젯밤 꿈에 나온 그에게도 감사하고. 꿈에서도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 멋있고, 돈도 많고, 말도 이쁘게 했다. 더 행복해져라, 그대도 나도.

9년 전엔 나도 이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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