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 어서 오세요!
오늘은 벗님의 축하를 받고 싶은 날이랍니다.
제가 이 초록별 지구에 등장한 날이거든요. 모태를 벗어나 세상에 첫선을 보인 날이요!
그렇다면... 뭐라도 한 마디... 해주셔야죠? 네, 축하해 주세요!
그 축하 인사를 막 쓰기로 해 볼까요?
거창하고 멋진 말은 말고요. 그렇게 쓰려하면 할수록 막 쓰기가 안 되니까요.
고맙습니다! 벗님이 나를 위해 축하의 글을 쓰시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네? 본인 입으로 생일 축하해 달라고 하기가 낯간지럽지 않냐고요?
아... 뇨? 전혀 아닌데요?
저는 그날을 늘 설렘으로 기다립니다.
'내 생일이 일주일 남았네? 와우!' 하면서요. 좋아라 하는 거죠. 그런 저를 보고 신기해하는 이들도 있고요.
- 그 나이 먹고도 생일을 기다리나?
- 늙어가는 거 실감하는 날인데 뭐가 좋다는 거야?
실제로 제가 들은 말들입니다.
'대체 어떤 스토리가 있길래 저럴까?' 싶으신가요? 그렇다고 '내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던 날'의 이야기를 벗님의 글쓰기 공간에서 구구절절 풀어놓으면 안 되겠죠?
다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내 모친께선 태중의 생명, 즉 꼬물이였던 나를 떨쳐내려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리기를 비롯해 별별 노력을 다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당최 아이가 떨어져 나가질 않자, '대체 어떤 애가 태어나려 이러나?' 궁금해질 지경이었다나 뭐라나...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태어나긴 했는데, 모친은 몸져눕고 갓난아기인 나는 모유를 한 방울도 먹지 못하고 방치되었다나 뭐라나...
태어났는데 누구한테서도 환영받지 못한 아가는 자라나면서 점점 '자축'의 의식을 중요시 여겼다나 뭐라나...
그런데 저뿐만이 아니더군요, '오늘 내 생일이다!'라고 스스로 알리는 사람이.
온 동네 떠나갈 듯 울어 젖히는 소리
내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바로 그날이란다
두리둥실 귀여운 아기 하얀 그 얼굴이
내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바로 그 모습이란다
하늘은 맑았단다 구름 한 점 없더란다
나의 첫 울음소리는 너무너무 컸더란다 하하하
꿈속에 용이 보이고 하늘은 맑더니만
내가 세상에 태어났단다
바로 오늘이란다
[생일]이란 곡의 노랫말입니다.
1978년에 남성듀엣 '가람과 뫼'가 데뷔하며 부른 곡이죠. 한 번 검색해서 들어보세요. 호탕, 경쾌, 신남을 다 갖춘 노래니까요.
무엇보다, 남들의 축하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경축! 나의 생일!'이라고 선포한 당당함이 제 맘에 쏘옥 듭니다. 작사가가 태어난 날의 실제가 어떠했건, 자신이 이 세상에 등장했다는 자체를 이리 멋지게 해석하는 능력! 현재를 행복하게 살게 하는 능력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튼 우린 모두 저마다의 탄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요.
눈물이 맺히거나 웃음꽃 피거나 혹은 아예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자라나면서 가족으로부터 들은 게 전부겠지만, 우리의 첫 등장씬은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벗님은 어떠세요? 어떤 탄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나요?
두 번째 막 쓰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승전결을 갖추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게 사실일까, 아닐까?' 하는 사실검증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고요, 보고서를 쓰는 게 아니니까요. 잉태와 출산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벗님이 듣고 기억해 온 벗님의 등장 '이야기'를 막 써보세요.
그 스토리에 관해 평소 벗님이 생각했던 것들도 써봅니다. 또는 스토리를 막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들과 그에 따른 또 다른 생각들도 끊지 말고 쭈욱!
가만, 그래도 벌써 열 번째 만남인데 막 쓰기에 제목을 한 번 달아볼까요?
'내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
오프라인 강의 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굳이 쓸만한 스토리가 없으면 뭘 써야 하죠? 들은 것도 별로 없고요. 태어날 때 이야기... 뭐, 특별할 것도 없고요. 딸만 넷인 집안에 내가 태어나 보니 다섯째 딸인 거예요. 눈이 빠지게 손자를 기다리던 할머니 입에 뭔 소리가 나왔을지 짐작이 가시죠? 뻔한 스토리죠. 우리 어머니는 나를 낳고 이틀도 못 돼서 밭으로 나가셨다는데...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이나 하시겠어요?"
짜증 한 움큼, 서글픔 한 움큼이 얹힌 목소리였죠. 가만히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슴이... 콕콕 쑤시더군요. 몇 초 후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저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써보세요. '쓰기 싫은데 자꾸 쓰라고 한다, 쓸 것이 생각나지 않는데 쓰라고 한다' 그렇게요. 조금 전에 말씀 술술 잘하셨거든요. 말하듯이 써보실래요?"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아, 그래서 자축을 어떻게 했냐고요?
미술전시회에 다녀왔답니다.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일들 중에서 나의 창작 욕망을 자극시킬만한 한 가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전시회 들이를 선물한 셈이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 중인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입니다. 작가의 국적, 교육정도, 활동, 배경 등을 알기 전에, 먼저 그림이 좋았기에 예전부터 그의 작품들을 눈여겨보았지요.
물론 전시회라는 것이 워낙 천천히 걸어다녀야 해서 금방 통증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럼에도 워낙 그림들이 제 시선을 잡아당긴 덕분에 잘 참고 관람할 수 있었네요.
특별히, 관람객의 참여코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햇빛 속의 여인]을 실제 공간처럼 구현해 놓았는데, 관람객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림 속 한 존재가 되어보는 체험이었지요.
다만, 무척 보고 싶었던 작품 한 점이 없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 아쉬움을 지금 이곳에서 벗님의 막 쓰기로 달래 볼까 합니다.
벗님, 아래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세요. 30초 이상을 찬찬히요.
이제 그 그림을 제게 소개해 주실래요?
순전히 벗님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보이는 대로 글을 써보는 거죠. 어떤 분위기와 느낌을 전해주는지, 벗님이 전해받은 그대로를 써보세요.
출처: 다음백과 / 에드워드 호퍼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네요.
그만큼 대중적 큰 인기를 끈 작품이란 뜻이겠죠. 이 그림을 향한 제 호감도 역시 높은 덕분에 글쓰기 강의 중 이따금씩 등장하는 글쓰기 재료입니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기회를 봐서 하고요, 오늘은 다른 분의 글을 가져오렵니다. '치유적글쓰기 4기' 수업 중에 수강생 한 분이 윗그림을 보면서 막~ 쓴 글이지요.
그림을 보는 순간 내가 밖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소외된 것인지 길을 읽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불빛이 좋다. 들어가고 싶은데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진다. 카페인가 식당인가? 안에 있는 그들끼리만의 비밀 얘기를 엿들을 것만 같다. 무슨 갱들의 근거지인 것도 같다. 밖에 이대로 서 있는 것도 두렵고 그렇다고 안으로 들어가기도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예전에 서울 사는 큰엄마집에 놀러갔을 때가 생각난다. 일곱 살 무렵이던가? 큰집 언니오빠들이랑 우르르 슈퍼에 몰려갔었다. 슈퍼 안은 별천지 같았다.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일행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 두려웠다. 큰집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때였나 보다. 내가 극한 길치의 길에 들어선 것이. 아는 길인데도 자꾸 헤맨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모임에 가도 나는 길치로 통했다.
그림 자체보다는 그림이 데려다준 어떤 특별한 순간을 그려냈지요. 의식의 흐름대로요.
벗님이 다른 누군가가 막 쓴 다른 문장들을 만나보면서, '다름'이 주는 '재미'와 '감흥'을 맛보셨길 바랍니다.
가만, 어느새 자정을 넘어섰네요? '내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던 날'도 덩달아 지나갔고요.
우리의 열 번째 만남을 벗님의 짧은 막 쓰기로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벗님, 시방 느낌은요?
먼저 느낌의 언어를 하나 적어 보세요. 그 후에 따라오는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그 생각들을 그대로 옮겨적고, 그에 따라오는 느낌도 또 쓰고.. 그렇게 딱 3분만 막 쓰기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