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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notes Apr 28. 2020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려면

겹쳐버렸다.

임신과 남편의 훈련과 코로나19가.


남편은 가장 강도가 높은 육군 훈련 중 하나라는 훈련에 들어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줄곧 나 혼자였다.

게다가 조금 지나고 나서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며칠 뒤면 집에 돌아오겠지! 드디어’ 희망에 잔뜩

부푼 나. 수화기 너머로 들이는 소리.


여보, 나 마지막 단계에서 떨어졌어.. 나 여기에서 두 달 동안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입덧이 가장 심할 시기인 임신 10-11주 차를 넘기고 있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한 시련(?)은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그저 견디는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에 찾아오는 입덧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여기에서 힘들다는 건 그냥 힘든 게 아니라 울렁거림에 토, 소화불량에 변비 등등 게다가 얼마 전 입덧으로 응급실까지 다녀온 나였기에) 냄새에 한없이 예민해져선 음식을 만든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한국에 있다면 입맛대로 골라먹는 외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너무 멀리 떨어진 미국 어느 군부대 지역 근처 작은 동네에 살고 있다.


게다가 한인마트는 도시에 있는데 약 100마일이 떨어져 있고 나는 입덧으로 운전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이 모든 것들을 견뎌내고자 나는 그저 버티는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더 이상 내 삶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그동안 남편이 훈련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돌아오면 이게 해결되겠지, 좀 덜 힘들겠고 지금 못 먹는 것쯤은 괜찮아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지내왔었다.


남편의 소식을 듣고 일단 조금 진정한 뒤, 주변에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일단 우리 엄마, “내가 원하는 각종 택배들을 시킬 테니 엄마는 이걸 좀 준비해줘!” 라며 엄마에게 긴급 택배 요청을 했다.

그리고 교회 어른께 내가 재료를 사놓을 테니 그 재료 손질과 함께 양념 SOS를 쳤다.


그리고 나는 집 청소를 했고 축복이를 산책시켰다.

밥을 먹었고 입덧이 심할 때 일찍이 누워 글을 써보려 한다.

이제부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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