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 3
새 학기가 됐다. 우리 학교는 작아서 반이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1학년 때부터 매년 똑같은 애들과 똑같이 같은 반이 됐다. 이미 다 아는 얼굴들이라, 전학생이 오지 않는 이상 자기소개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근데 가끔은 너무 지루하다. 벌써 나도 6학년이 됐는데, 매일 같은 얼굴들을 동네에서도 보고 학교에서도 본다. 나도 이런데 선생님은 어떨까? 담임 선생님도 작년하고 같았다. 교장선생님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담임 선생님을 정하는지는 모르겠다. 일 학년과 이 학년 땐 달랐는데, 삼 학년과 사 학년 땐 똑같았다. 뭐, 어른들이 알아서 하는 거겠지.
30명이 조금 넘는 우리 반에서 나는 조용한 편이다. 나는 나대는 게 싫다. 그냥 아무 말썽도 안 일으키고 졸업해서 중학교에 가고 싶다. 그래도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이랑 같이 논다. 왕따는 아니니까. 선생님이랑 같이 교실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엔 운동장에도 나간다. 근데 이젠 예전처럼 뛰어놀진 못하겠다. 나보다 어린애들이 정글짐이나 방방이를 타는 걸 보면… 이젠 좀 의젓해 보이고 싶다. 저번 겨울방학 때 키가 커서 그런지 작년에만 해도 까치발을 해야 겨우 닫던 철봉이 이제는 그냥 손만 뻗으면 닿는다. 난 얼마나 더 클 수 있을까? 엄마 아빠 키가 중요하다던데… 잘 모르겠다.
엄마가 저녁밥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티브이를 틀었다. 요새 티브이에서는 재밌는 게 없다. 아빠가 보는 뉴스에서는 맨날 어른들이 나와서 서로 싸운다. 그래도 어른이라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 정도로 끝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저 멀리 해외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고도 한다. 군인 아저씨들끼리 싸우는 건 무슨 느낌일까? 내가 가끔 하는 총싸움 게임 같은 걸까? 내가 물어봐도 아빠는 대답을 잘 안 해준다. 아빠도 싸움을 해본 건 아니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반밖에 없어서 반 아이들이 다들 사이좋게 지내지 않냐고 어른들이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음, 음 하면서 대답하기가 힘들다. 4학년 때까진 네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었는데. 사실, 우리 반에는 사이가 안 좋은 아이가 둘 있다. 이건 일기니까, 이니셜?로 그 아이들의 이름을 쓰면 R이랑 U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R은 덩치가 크다. 밥도 빵도 많이 먹고 목소리도 크다. 처음 봤을 땐 솔직히 나랑 같은 학년이 아닌 줄 알았다. 선생님한테 이른적은 없었는데, 사실은 나는 R한테 몇 번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꼭 내가 학교 앞 구멍가게를 가는 걸 얼마나 잘 알아차리던지. 귀신같이 알아먹고선 곰처럼 다가와서 나한테 천 원짜리 하나를 주면서 군것질거리를 하나 사 오라고 했다.
U는 음… R보단 작다. 그래도 나한테 나쁜 짓은 한 적은 없다. 그냥 좋아하는 게 달라서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그 친구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무서운 친구가 아니라는 정도? 여름방학 때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내기하는 U의 모습을 많이 본 적은 있다. 아참, U의 집은 쌀가게를 한다. 우리 집도 U의 집 걸 사 먹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큰 문제는 R과 U가 벌써 일 년째 싸우고 있다는 거다.
그 둘이 맨날맨날 서로 주먹질을 한다는 건 아니다. 그냥 꾸준히 싸운다. 어떤 날은 운동장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어떤 날은 종례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 눈을 피해서. 다른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이게 너무 불편하다. 그게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는 것도. 보통 애들은 싸우면 둘 중 하나다. 다시 화해하고 잘 지내던지, 그다음부턴 서로 말을 하지 않던지.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바뀌면 다시 친해지기도 한다. 이 조그마한 학교에서 서로 사이 나빠봤자 뭐 하려고… R과 U의 싸움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싸움의 시작은 5학년이 되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였다. U는 가방에서 크림빵을 꺼냈다. 봉지를 뜯고 조금씩 빵을 먹고 있던 U에 별안간 R이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선 크림빵을 차지했다. 그때의 기억이 자세히 나진 않지만, R과 짝꿍이었던 애의 말을 들어보면 그날의 R은 유독 표정이 나빠 보였다고 했다. 사실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평소엔 심부름만 시키는 정도였던 녀석이 왜 갑자기 그랬을까. 빵을 빼앗긴 U는 R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이내 R에게 몇 대를 맞고 코피가 났다. 그때는 나는 이 싸움의 승자가 R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때부터 둘은 서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앞에 R과 U에 대해서 잠깐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있다. 둘은 친척이다. 그 둘의 집은 우리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교실에 앉은 자리도 멀지 않았다. 수업 시간 중간에 종이를 뭉쳐 던지면 정확히 맞출 수 있는 정도? 위의 크림빵 사건 이후로 둘은 수업 시간에도 서로를 향해 공격했다. R이 자신의 뾰족한 샤프나 펜을 U 쪽을 향해 던지곤 했고, U도 그에 질세라 조그마한 모래나 불량식품 같은 잡다한 것들을 던졌다. 친척끼리 사이가 나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맨날 외삼촌 얘기를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곤 하니까. 그런데 저 둘이 일 년 동안이나 싸우는 걸 부모님도 알 텐데… 저 두 집은 그런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을 벌써 수십 번도 더 했다.
근데 내가 정말 정말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선생님이 별말이 없다는 거다. 물론, 크림빵 사건으로 둘이 교무실에 불려 간 적이 있다. 선생님이 알아서 잘 타일렀겠지. 근데 아까 말했던 수업 시간의 주고받기 후에 둘은 점점 다른 곳에서도 싸웠다. 쓰레기 분리수거장, 과학실, 음악실은 물론이고 하굣길에 굴다리에서 서로 주먹을 다지고 있는 R와 U를 봤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들려왔다. 선생님도 그걸 알고 있다. 우리 반에서 정보가 제일 빠른 A가 그 소식을 선생님한테 가서 이르곤 하기 때문이다. 두세 번째 싸움까진 선생님이 둘을 따로 더 불렀었던 것 같기도 한데. 선생님도 그냥 포기해 버린 걸까? 선생님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후로 우리 반 분위기도 조금은 바뀐 것 같다. 아이들끼리 둘의 싸움에 관한 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평소에 큰 문제도 없이 착하게 지냈던 U의 편을 드는 것 같다. 특히, 저학년 때 R에게 괴롭힘 비스름한 걸 많이 당한 P와 C는 좀 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많은 아이가 그 일과 자신이 상관없거나, 아직은 나중에 R에게 해코지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그 말을 굳이 교실 안에서 크게 말하진 않는다. 나도 속으로는 걱정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저학년 때만 해도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곤 생각 못 했는데...
근데 둘의 싸움은 점점 과감해진다. 샤프를 던지다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R은 자기의 꼬붕 B를 옆에 낀 채 한 쪽 손으로 가위를 들고 U 쪽을 보면서 무언가를 잘라버리겠다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사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이러다가 정말 큰 싸움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가끔 학급 회의 주제로 이 일을 건의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선생님도 못 멈추고 R와 U의 엄마 아빠도 못 말리는 걸 우리 반 회의에서 말한다고 해서 해결이 될까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반에 큰일이 생기지 않고 조용히 졸업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그냥 나도 남은 일 년만 참으면 되니까 조용히 있으면 되는 걸까? 우선 얼마 후 있을 반장 선거부터 나설 생각도 든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둘의 싸움이 일어난 지 일 년이 된다. 나의 육 학년 생활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