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 4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 이 말을 들은 건 올해 초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한 한 아르헨티나 감독이 찍은 영화와 곧이어 이어진 GV를 보고 나온 뒤였다. 나는 그 당시 베를린에 있었고,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고, 간만에 생긴 긴 휴가를 영화제를 보러 가기 위해 사용했었다. 어차피 계속 베를린에 있는 김에 나는 2주짜리 짧은 독일어 수업을 등록했다.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 이 말은 그때 영화를 같이 보러 간 멕시코 친구가 나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반이었고, 역시 영화를 좋아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쉬는 시간에 먼저 ‘홍상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했고, 그 계기로 친해졌다. 나는 홍상수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고 대신 내가 좋아하는 다른 감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 그녀도 독일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베를린영화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우리 둘은 도시 곳곳에 배치된 영화제 팸플릿을 보며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골랐다. 내가 고른 영화 중 하나는 <El rostro de la medusa (해파리의 얼굴)>이라는 제목을 가진 아르헨티나 영화였고, 나는 그녀가 멕시코에서 왔으니 마치 자국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판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의문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영화가 별로였어? 응, 그냥 그랬어. 그래도 같은 언어를 쓰니까 이해가 잘 되는 거 아녔어? 언어에 관해서는 맞지만, 멕시코에서의 삶과 아르헨티나에서의 삶은 아주 달라. 아마 그럴 거야. 이어서 진행된 GV를 나는 집중하지 못했다. 내가 조금 거만했구나. 그리고 자리를 나오면서 그녀가 말했다. 내가 아르헨티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의 심리상담을 받았다. 한 번은 대학교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회사에 들어가고 난 뒤였다. 첫 번째 상담의 경우 이제는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때는 나 자신이 정말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상담이라,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심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선생님이 나를 담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나의 현재 마음을 바로 묻기보다 나의 인생의 시작점과 중간 지점들, 그러니까 어렸을 적 있었던 가족과의 일들이나, 유년 시절에 나에게 큰 기억을 남긴 사건들을 살피며 상담을 진행했다. 확실히, 상담은 큰 도움이 됐다. 나는 그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남을 이해하려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시간순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살피는 것이었다.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 라는 말이었어. 그건. 그녀의 말로는 아르헨티나가 20세기부터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일이 많았다고 했다.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부터, 나치 독일을 피해 남미로 이주한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그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필연적인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마치, 사람마다 주치의가 있는 것처럼 아르헨티나에는 담당 상담심리사가 있다는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그러면, 방금 GV를 마친 저 사람도, 그 옆에 같이 온 통역사도, 그리고 스크린에 있던 배우들도 개인 상담사가 있다는 말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럴 수도.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축구를 좋아한다. 그녀는 술과 담배를 좋아했다. 가끔 수업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 바에 가곤 했는데, 그녀는 그때마다 담배를 말아 피웠다. 여기의 바는 한국과 담배를 피우는 것이 허용됐는지, 테이블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머리가 아픈 날이 많았다. 바로 내 앞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그녀는 고향인 멕시코에서 선생님을 한다고 했다. 전공은 역사.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축구를 좋아한다. 바로 몇 개월 전에는 카타르 월드컵이 있었고, 그 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나는 집에서 TV로 그 장면을 봤다. 우승한 축구팀이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올 때 엄청난 인파가 거리로 나오고 광장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얼마나 지금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어렸을 적 피아노학원에서 선생님이 나에게 가르쳐준 어떤 가곡의 제목이 생각났다.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 였나?
모든 아르헨티나인은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 그녀는 이 주 간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예컨대 멕시코 사람의 이름은 엄마와 아빠의 이름이 다 들어가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나에게 설명하기도 했고, 자신이 왜 어렸을 때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지에 대한 것들 또한 말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현재 우울하다는 사실이었다. 출국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우울증 약을 처방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현재 불안정한 상태라고도 말했다.
모든 멕시코인은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 그녀는 가끔 약을 술과 같이 먹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아는데, 그걸 멈추는 게 쉽지 않아. 그래도 그건 옳지 않지. 지구 반대편까지 날라와서 또 다른 반대편에서 날아온 사람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한 달간의 베를린 여행은 점차 끝나갔고, 우리는 3월이 되기 전에 하루 간격으로 브란덴부르그 공항을 통해 각자의 경로로 날아갔다. 헤어지기 전에 메일 주소를 교환했고, 나는 한 달쯤 뒤에 그녀에게 잘 지내고 있냐고, 새 학기는 잘 시작됐냐는 안부 메일을 보냈다. 그녀로부터 답장이 온 것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였다.
안녕. 메일을 줘서 고마워. 나는 멕시코로 돌아오고 난 뒤에 아팠어. 아마도 네가 말했던 대로 담배와 술과 우울증 약을 같이 먹다 보니 상태가 나빠진 것 같아. 그래서 학교 수업도 못 나갔었고, 몇 주간은 병원에 있기도 했어. 퇴원한 뒤에는 최근에 심리상담을 시작했어. 웃기다. 그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아르헨티나’인에게 상담심리사가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내가 상담받고 있으니, 말이야. 어쩌면 내 가족의 역사를 훑어보면 아르헨티나인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혹은, 이 상담을 마치고 나면 그때 봤던 영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최근에는 영화모임을 하나 시작했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대한 것인데, 영화랑 책을 보고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나누는 식이야. 얼마 전에 그의 <Зеркало (거울)>을 보고 큰 감명을 받기도 했어. 나중에 내 실력이 된다면 여기서 나온 담론과 내 생각을 독일어로도 번역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 그때는 수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계속 연락 전해줘. 소식이 듣고 싶어. 그럼, 이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