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 10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에 사람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산책하기, 작법책 읽기, 밖에서 친구를 만나 대화하기 그리고 그 대화에서 기억나는 것들, 혹은 길을 걷다가 생각나는 문장을 메모하기. 하지만 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도, 도저히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하는 수 없다.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한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새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흘린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 라고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아니다,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우선은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나가는 생각을 한다. 마침 맥도날드에는 연말을 기념하는 새로운 메뉴가 출시됐고, 나는 그것을 먹고 싶은 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방 안에 머무르는 대신 샤워를 하고, 15인치 디스플레이를 가진, 어쩌면 소설 쓰기용으로만 생각하면 과한 크기일지 모르는 노트북을 가지고 나는 버스를 타러 나간다. 중간에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맥도날드에 아침 9시 30분에 도착한 뒤, 나는 내가 원하는 메뉴를 시키려고 하지만, 오전에는 오로지 맥모닝이나 크로아상에 아메리카노를 곁들인 아침메뉴 밖에 팔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좌절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글을 쓰러 온 것이지, 햄버거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되새기며, 커피와 초코 머킨 하나를 시킨다. 그리고선 다음에는 아침에 맥도날드에 절대로 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머핀보다 더 큰 커피잔을 연신 들이키면서 나는 글을 쓸 준비를 마친다. 이 방법 또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커피를 한 번 바라보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괜시리 시선을 한 번 더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밖은 조용하고, 이따금씩 행인이나 자동차가 지나갈 뿐이다. 시선을 돌려 매장안을 둘러본다. 대부분은 한량처럼 보이고, 누군가는 정장을 입은 채 아침식사 이후에 있을 회의준비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맥도날드에 와서 크로아상이나 쿠키를 마시고 다시 떠난다. 어쩌면 오전 시간이 다 끝나가도록 남아있는 사람을 나 뿐 일지도 모른다.
나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소설을 쓸 때 피해야 할 것 중 하나. 주인공이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소설을 쓰지 말 것. 누군가가 쓴 실패작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우울해진다. 아니다, ‘쓰지 말 것’ 앞에 다른 조사가 있었던가? ‘되도록이면’ 혹은 ‘가급적’이라는 단어들이 생각난다. 가급적, 이란 단어는 어느 정도의 피해함을 나타내는 척도일까 생각한다. 가급적 겨울에는 찬 물을 마시지 말 것. 가급적 실내 온도를 22도로 유지할 것. 가급적 운전벨트를 착용할 것. 가급적 자동차 기어를 N에 둘 것. 가급적 고정금리 상품을 이용할 것.
카페에 앉아서 상상하는 것이 현실의 사건보다 재미가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신년을 축하하는 그래픽으로 가득 찬 포장지를 보면서, 나는 얼마전에 봤던 지하철 광고판의 퀴즈가 생각났다. 일 년에 독일에서 포장지로 사용되는 종이는 8천 톤이라는 사실과, 비행기의 사고확률이 번개 맞을 확률보다 작다는 것. 그렇다면 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으려면 얼마나 많은 비행기를 얼마동안 타야 될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전세계의 공항 만을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비행기를 타는 삶, 비행기에서 자고, 먹고, 편집된 영화를, 혹은 허접한 한글자막이 입혀진 한 철 지난 명작들을 보는 삶. 공항에 잠시 내려 공항 안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바라 보는 것. 출장을 가는 지 말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들, 여행에 들떠서 한껏 치장한 사람들. 그리고 목적을 알 수 없이 평상시의 복장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역시나 공항 안의, 할인 쿠폰이 적용되지 않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한 입 베어먹으며 바라보는 나의 삶. 그리고 안내 방송에 맞추어 플랫폼으로 걸어가는 삶. 지상에 땅을 닫고 있는 것보다 하늘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
그렇게 무한정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문득 내가 도서관에서 빌렸던 아포칼립스 이후의 생존방법을 다룬 책이 생각났다. 다시 한 번 전쟁이 일어나면, 그땐 인류는 절멸의 수준에 다다를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현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않고 다시 인류를 번영으로 일으킬 수 있는가? 다른 한편으론, 그런 아포칼립스가 일어날 때 동안 비행기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내가, 마침내 그 낮은 확률을 뚫고 만약에 탔다면 사고로 죽었을 비행기를 타는 대신 육지에 발을 다시 디딘다면, 그 시간 동안 역시나 무수히 쌓여버린, 고정금리 대출로도 갚을 수 없이 불려져버린 도서관 연체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난 파일럿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1년 365일을 보낼 수 있을 만큼 티켓을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그러고보면, 언젠가는 인류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지금 내가 더 이상 글을 쓸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의 몇 십 배가 흐른 뒤에 어떠한 인류의 먼 후손이나 외계의 존재가 문명의 흔적을 찾았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라도 가질 수가 있을까? 그때에도 은행이라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쩌면 이 글에서 단 한가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급적 고정금리 상품을 이용할 것’. 그 사이 시간은 흘렀고, 맥도날드에서는 정규메뉴를 팔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먹고 싶었던 행사 상품을 단품으로 시켰고 그것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무슨 글을 써야될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이제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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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텍스트는 항성계 MW-19121024 분류번호 DE-BB-MCD-210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본 낭독회의 대본입니다. 이 글은 혼란을 막고자, 그리고 고고학적 의미와 의미론적인 예술성을 극도로 끌어올리고자 위 텍스트를 작성했던 인물이 사용했던 언어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본 글이 쓰여진 직 후, 어떠한 사건으로 인하여 당시의 현생 인류는 거의 절멸하고,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글은 문명 조사단에 의하여 어렵게 얻어낸 데이터를 복구한 것 들 중 일부입니다. 앞으로도 조사단의 활동에 힘입어, 수 만 년 전 있었던 인류들의 생활을 재구성하고 재구축 하는 과정은 계속될 예정입니다. 예술계는 조사단에 의하여 복원된 텍스트 들 중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 지속적으로 이런 행사를 열 예정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