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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Feb 14. 2023

타인의 세계

연중 가장 바쁜 1월이 끝났다. 일주일 휴가를 내고 삿포로에 왔다. 3일 차인데 여긴 정말이지 눈의 도시다. 툭하면 눈이 오고 무릎까지 쌓인다. 사람들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 눈을 치우고 차들은 눈길이 아닌 것처럼 쌩쌩 달린다. 첫 날에는 완전히 이방인이 된 느낌에 조금 울적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해졌다. 숙소는 삿포로 중심가와 꽤나 떨어진 유리가하라인데 벌써 지도 없이 전철을 타고 웬만한 데는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리저리 다니며 전철을 탈 일이 많았는데 나는 그때마다 책을 꺼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쓸 책의 대략적인 구성을 잡을 생각이고, 레퍼런스를 얻기 위해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들의 책을 사왔다. 그 작가는 이슬아와 캐럴라인 냅인데 이들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있다. 그리고 마음 속에 무언가를 남긴다. 때로 삶에 대한 자세도 고쳐앉게 한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기에 이번 여행에서 그들의 책을 꼼꼼히 읽고 싶었다.


쓰는 사람의 모드로 읽어서 그럴까? 한 편 한 편의 글에서 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지 상상하게 됐다. 감탄스러운 표현이나 스토리텔링을 볼 때면 모니터 앞에서 고뇌하는 사람이 그려졌다. 생생한 묘사를 읽을 때면 그 경험을 하면서 머릿 속으로 이야기를 그렸을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편일 뿐이겠으나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세계를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그만큼 내 시야가 세계가 넓어진 실감도 든다. 나는 이 행위를 멈추면 절대 안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내가 묵는 숙소는 일본인 가족이 사는 가정집의 방이다. 이 가족의 삶의 방식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데 참 행복하게 산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쉴새없이 손님을 들이고 아침밥을 해주는 건 이 가족에게 분명 추가 수익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리라. 그런 수고를 기꺼이 맞이하는 게 이들이 매일 떠나갈듯 웃으며 밤을 보내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세계를 엿보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 언젠가 다시 부끄러워 질지도 모르겠지만 흡족한 정의를 내리게 되어 기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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