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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Oct 23. 2021

말 더듬이의 글쓰기란

06

인터뷰어가 되고 난 직후 내 관심은 인터뷰를 잘하는 방법에만 쏠려있었다. 당연히 하루 고생했다고 노련한 인터뷰어가 될 리 없었기에 훈련이 필요했다. 간과했던 건 인터뷰어에게 인터뷰만큼 중요한 게 글쓰기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쓰고자 하는 주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차라리 말로 하면 논리에 구멍이 좀 있어도 분위기나 뉘앙스로 소통할 수 있는데 글은 그렇지 않다. 작은 빈틈이라도 있으면 가치 없는 글이 돼버린다.


나는 이해가 느린 사람이었다. 대화가 부족한 채 어른이 된 사람은 같은 말이라도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니까. 당연히 글쓰기도 서툴렀다. 인터뷰를 글로 편집한 후에는 편집장님 확인을 받아야 했는데 수도 없이 퇴짜를 맞았다. 글 쓰는 게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밤마다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재구성했다. 때론 문단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다. 어떻게 쓸지 얼추 보이는 것 같아도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문장 간, 이야기 간 구멍이 보였다.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면서 머리를 쥐어짰다. 느릿느릿 한 편 두 편 완성해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그 고생을 하면서 허비한 지난 시간을 메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의 말은 항상 어딘가 빠져있지 않았는가. 꼭 말 더듬이 튀어나와 어떻게든 대화를 끝내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는가. 내 의견은 늘 미완성으로 전달됐고 대화는 언제나 애매한 결론만 남겼다. 글을 쓸 때는, 시간이 정말 정말 오래 걸리더라도 빈틈을 방치한 채로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길게 들여다보면 문장 간 부족한 연결고리가 보였다. 빈틈은 없지만 어딘가 어긋난 글도 보였다. 고작 세 문단을 완성하는데 일주일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온 글은 (스스로의) 아쉬움이 없었다. 적어도 빈틈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을 들여야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고, 실수는 없나 돌아볼 수 있고, 초안을 수정할 수 있는 글의 속성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 순간 뱉으면 끝이고,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도 없고, 더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말을 할 때 느꼈던 아쉬움을 모조리 상쇄했으니까. 또 글에서는 말 더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매일 밤 쓰고 쓰고 또 썼다. 내가 쓴 인터뷰가 페이스북에 올라가 수 천 개의 좋아요를 받았을 때는 느낀 적 없는 희열을 느꼈다. 감격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구나. 말로 할 때는 늘 상대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내가…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타인의 이야기였다. 마로니에 공원에 나가 행인 A를 붙잡고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를 집에 와 글로 다시 풀어냈다. 신기하게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받은 A에 대한 느낌과 글로 다시 쓴 뒤의 A에 대한 느낌은 달랐다.


A가 해준 이야기를 한 번 더 오래 들여다보고 글로 풀어냈을 때 훨씬 그를 깊게 이해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때론 글로 옮겨 썼을 뿐인데 상대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겉모습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내가 말을 더듬는다고 해서 내 모든 세상이 절뚝거리진 않는 것처럼.


서사를 부여하면, 누구든 특별해질 수 있다. 아니, 서사를 들여다봐야만 상대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


쓰면 쓸수록 나는 글의 속성과 쓰는 자세로 세상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빈틈없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누구든 너무 쉽게 판단하는 일은 없도록. 누구든 오래 들여다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제가 말은 더듬는데, 글은 좀 써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여전히 글을 못 쓴다. 너무 느리고 뒤늦게 발견되는 빈틈이 많아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 힘들다. 비효율적이다. 지금도 끙끙거리며 쓰고 있다. 그렇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아쉬움 없이 완성해나갈 때면 말 더듬이 남긴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 든다. 말 더듬이였기에 만들어진 한계가 깨지는 느낌도 든다. 이 느낌이 내게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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