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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Oct 23. 2021

우리는 살아온 날을 되돌아봐야만 한다

07

형의 장례식에 딱 하루 있었다. 10살의 나는 장례식장의 공기를, 그것도 부모님이, 할머니가, 형의 친구들이 우는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다. 셋째 날에는 영정 사진을 들고 형이 누울 장소로 걸어야 한댔다. 아빠가 형의 마지막 길을 앞장서 달라고 했지만 난 너무 그 장소에 있기 싫었다. 형이 없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서. 영웅 같았던 어른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워서.


더 찢어질 부모님의 마음도 모르고 떼를 썼다. 결국 형의 빈소를 하루만 지키고 부산에 있는 외삼촌댁에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지냈다. 난 형의 발인을 보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마땅히 내 몫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절차를 꼭 지나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 형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정해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27살 여름, 대학 동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그의 발인을 함께했다. 아들을 보내야 하는 가족을 봤다. 나는 우리 가족을 떠올렸다. 형의 발인날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통곡했을 것이다. 형 친구들도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치미는 슬픔을 억누르고 아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온 친구들을 챙겨줬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정말 길었다. 눈물이 서너 번쯤 차올랐던 것 같다.


무심코 넘겨버렸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집구석에 있던 궤짝에서 발견한 엄마가 세상을 떠난 형에게 썼던 편지라던가 “요즘 자꾸 꿈에 네 형이 나와” 아빠의 지나가는 말이라던가 나를 여자 친구에게 소개하며 “내가 자주 말했었지? 옛날에 친했던 친구. 걔 동생이야”라던 형의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C의 한마디라던가 하는 것들이 말이다.


20년 가까이 내 슬픔만 더듬느라 주변의 눈물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이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면 기분이 어땠을까. 말 더듬 때문에 생긴 소심함 같은 미운 모습을 목격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마치 형을 떠나보낸 슬픔이 내 몸에 남아 붙어있는 것 같지 않았을까.


엄마도 아빠도 C도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는 더 열심히 일해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 엄마는 내 교육을 위해 어떤 다른 엄마들보다 열심히 사방으로 뛰었다. C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해 어릴 적 그의 꿈을 이뤄내고 있었다.


반면 나는 말 더듬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좋은 대학에 못 간 것도 게으름도 어릴 적의 아픔 탓이라며 정당화하면서. 그럴수록 나는 가라앉을 뿐이었다.


여전히 형을 잃은 슬픔 속에 살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벗어나야 했다. 나만 보고 사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하늘에서 나만 지켜보고 있을 형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동기의 발인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런 다짐을 했다. 이제 그만 형을 떠나보내자고.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이지만 길거리 인터뷰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던 건 그 다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터뷰어가 되고 2년 정도 지난 뒤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말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인터뷰를 할 때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누군가에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말 더듬이라는 가장 잘 드러나던 상처를 정면으로 회복하면서 나는 더 이상 움츠려들거나 남의 말만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내 안에 언제까지고 붙어있을 것만 같던 슬픔은 이를 이겨내고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바뀌었다. 형에 대한 기억도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으키는 동력이 되었다. 말을 못 하고 내 생각을 가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안타까워하시던 부모님도 그즈음부터 미소 띤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간 앞을 가리던 벽을 깨기 위한 발걸음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 그날부터 시작됐다. 발자취를 돌아본 것이 나 자신을, 내가 안고 있던 문제를 파악하게 했다. 우리는 조금 더 지나온 나날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저께 했던 생각도 목격했던 광경도 느꼈던 감정도 오늘이면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중요한 걸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내보이며 삶이 바빠 살아온 이야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삶을 돌아보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등대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직접 느꼈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 인터뷰를 하면서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느껴왔던 부분이기에 확신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스토리는 지금의 나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며,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좋은 가이드가 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내가 인터뷰어로서 꺼내는, 내보이는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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