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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두부 Oct 23. 2021

인터뷰어라는 이름

05

“낯선 사람의 길거리 인터뷰 5건”


인터뷰어에 지원하기 위해 내가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유난이랄만큼 긴장됐다. 인터뷰를 위해 길거리로 나가기 이틀 전부터 손은 땀으로 젖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니 관두면 그만이었다. 수도 없이 그렇게 포기해왔지 않은가. 음식점에서 주문을 할 때도 친구에게 부탁하고 팀플에서 발표자를 정해야 할 땐 “제가 말을 더듬어서요…” 라며 피하고.


긴장이 심해져 “에이, 안 해”라며 돌아 누웠다. 그러나 몇 번을 돌아 누워도 마음에서 미련이 자라났다. 이 일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길거리 인터뷰를 한다는 게 어떤 능력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가늠도 못했지만.


연습 삼아 카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학교 과제라고 둘러댔다. 질문 리스트를 준비해 갔지만 무용지물이었다. 1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예상 못 한 3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준비한 2번 질문을 하기 어색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맥락 없는 질문만 열 번은 던진 뒤 첫 인터뷰가 끝났다. 더 했어야 했는데 눈앞이 캄캄해져 “ㅈ..ㅈ..자, 이..이 정도면 충분하네요"라며 끝내버렸다. “다 된 거 맞아요?” 부부는 걱정했다.


스타트를 끊으면 긴장이 덜해질 줄 알았는데 배로 커졌다. 낯선 사람과의 즉흥 인터뷰는 걱정보다도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미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나갔다. 3시간 동안 20명 정도에게 말을 걸었는데 인터뷰를 승낙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거절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가장 많이 접한 반응은 ‘그런 거 안 해요’라는 말이었다. 뭔지 말도 안 했는데… 아니면 놀란 듯 보더니 죄송합니다 하고 갈 길을 가거나. 슬픈 건 그 모든 거절이 이해됐다는 거다. 유창한 사람이 말을 걸어도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말까지 더듬거리면서 다가오니 더더욱 수상했을 거다. 한여름이었다. 숨 쉴 때마다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더운 공기가 의지를 꺾었다.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왜 길거리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는 거지? 핑계를 찾듯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시험 기간에 괜히 방청소를 하듯이. 이런 시도가 말 더듬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는 건가? 아니면 말 더듬 때문에 땅에 떨어진 자신감을 되찾고 싶었나? 아니면 이런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될까봐?


전부 갖다 붙일 수는 있는 이유였지만 지칠 대로 지쳐있는 나를 다시 붙들어 올릴 만큼의 설득력은 없었다. 나는 포기했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콜드 브루를 시키고 싶었지만 ‘ㅋ’ 발음이 어려워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마다 느꼈던 것이었다. 10년 넘게 지겹도록 겪었던 해프닝이 한 번 더 일어난 것뿐이다.


버스를 타러 서울역 앞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앳돼 보이는 여학생이 갑자기 나를 붙들고 말을 걸었다. 자기 몸집만한 모금함을 들고 있었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큰 도움이 될 거랬다. 


그는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아, 아 그 그 그럼 모금할 테니까 제 부탁도 들어주세요”라고 말했다.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나는 3천 원을 냈고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 모금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나요. 황당함 섞인 표정과 목소리로 여학생은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소아암 환자 다큐멘터리에 마음이 동해 이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서울역 한복판에서 모금함을 들고 서있다 보면 무시하는 사람도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고 했다. 더운데 고생 많으시다는 말에 그는 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이라며 내가 더 더워 보인다고 했다. 이 3천 원을 내고 얻은 몇 마디 대화가 나의 첫 길거리 인터뷰다.


하나를 성공하니 집에 갈 마음이 옅어졌다. 나는 그 여학생을 만나기 전보다 적극적으로 지나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마음이 순식간에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작고 어설프지만 너무나 중요한 한 걸음을 뗀 느낌이었다. 말 더듬이 무서워할 말을 참아낼 때 느꼈던 기분과 정확히 반대되는 감정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거절이 무섭지 않았다. 입을 못 떼는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표정도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어떤 기세로 나타났는지, 인터뷰 성사율이 높아졌다. 서울역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방금 막 지방에서 올라온 남학생 두 명, 액세서리를 팔러 나온 공예과 여학생, 군대 휴가 나온 남자 친구를 기다리던 여성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그때 인터뷰를 보면 인터뷰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어설프다. 그러나 그날 나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뻤다. 상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묻고 귀담아듣는 자세 만으로도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자신을 궁금해하는 인터뷰어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말 더듬은 신경 쓸 거리가 아니었다. 인터뷰어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나는 내 말 더듬을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10살 이후 그런 실감은 처음이었다.


나와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모금함 여학생처럼 크든 작든 저마다의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청소 아주머니는 서울역의 질척한 새벽에 대해 말해줬다. 지방에서 올라온 남학생 둘은 이번 달부터 같이 살게 됐는데, 둘도 없이 친하지만 함께 사는 건 다른 문제라 걱정된다 했다. 공예과 여학생은 이렇게 발품을 팔지 않으면 졸업작품 준비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 못한다고 했다. 휴가 나온 남자 친구를 기다리던 여성 분은 군대가 그렇게 힘든 곳인 줄 알았으면 보내기 전에 더 따뜻한 말을 해줄걸 하고 후회한다고 했다.


내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서울역 광장을 바라보는데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햇살이 강하게 내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빛이 나는 듯했다. 내가 오늘을 기쁘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저들도 오늘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사연이 있을까. 더 붙잡고 묻고 싶어졌다.


그 늦여름 하루는 말 더듬이라는 이름뿐이었던 내 인생에 인터뷰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날아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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