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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막걸리의 탄생, 쌀 부족이 만든 대안의 역사

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199

1966년 밀가루 막걸리의 탄생, 쌀 부족이 만든 대안의 역사


얼마 전 농림축산식품부는 매년 쌀이 남아도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25년부터 서울시 면적의 30%를 초과하는 벼 재배 면적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각 시도에 재배 면적 감축량을 할당하고,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고품질 품종 중심의 생산‧소비 구조를 만들고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식품기업의 쌀 활용 확대, 전통주 산업 육성, 산지 유통산업 구조개선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순간부터 쌀이 남아돌아 소비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몇 년간 쌀 생산량은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소비량 감소는 그보다 더 급격했다. 2019년 쌀 생산량은 374만 톤에서 2021년 388만 톤으로 일시 증가했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370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05년 81kg에서 지난해 56kg으로 줄어들며 18년 사이 30% 이상 감소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154.6g, 즉 공깃밥 한 공기 반 정도에 해당한다. 쌀 과잉 생산으로 인해 정부는 매년 쌀 매입에 9916억 원, 보관 비용으로 1187억 원을 지출하며 연간 1조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쌀들은 과잉 생산되고 있다 @픽사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가공식품 수출 확대, 고품질 쌀 보급 등 새로운 수요 창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주는 쌀을 주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쌀 소비량이 상당하다. 과거에는 술 제조에 사용되는 쌀 소비가 많아 국가적인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조선 영조 시절, 형조판서 김동필은 "한양으로 들어오는 쌀이 모두 '삼해주' 제조에 쓰이고 있으니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바 있다. 삼해주는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주로, 다른 술에 비해 쌀 사용량이 많은 제조법을 특징으로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종 2년 대왕대비가 삼해주 제조를 금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삼해주는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금주령까지 유발할 만큼 쌀 소비가 많았다. 현대에도 쌀 부족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 막걸리 등 전통주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한 사례가 있었다.


사실 우리가 쌀을 풍족하게 먹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1960년대 이전까지 쌀은 귀한 식량자원이었다. 쌀 생산량은 1950년대 약 200만 톤에서 1961년 301만 5000톤, 1970년 393만 9000톤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인구는 1962년 약 2643만 2000명에서 1970년 약 3179만 3000명으로 20%가량 늘어났고, 1인당 연간 쌀 소비량도 1962년 124.4㎏에서 1970년 136.4㎏으로 증가하면서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는 지속되었다. 부족한 양곡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 외화는 국가 전체 수입액의 10%를 차지했고, 국제수지 적자의 40%가 양곡 수입으로 인해 발생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83달러에서 1970년 253달러로 증가했지만, 부족한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이자 산업 발전의 장애물이었다.

쌀이 부족한 시기를 보릿고개라 불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결국 1960년대 정부는 절미 운동과 혼‧분식 운동을 통해 쌀 소비를 줄이려 했다. 절미 운동은 가정에서 쌀 소비를 자제하자는 캠페인이었고, 혼‧분식 운동은 보리, 콩, 조 같은 잡곡을 섞은 밥이나 밀가루 음식을 장려했다. 초기에는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으나, 점차 단속과 규제를 통해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예컨대 음식점에서는 보리와 국수를 섞은 음식을 판매해야 했고, 육개장이나 곰탕, 설렁탕 같은 요리는 쌀 50%, 잡곡 25%, 국수 25%를 섞어 조리해야 했다. 또 1969년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 일명 ‘무미일(無味日)’로 지정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이러한 양곡소비 절약을 강화하기 위한 시책으로 정부는 1963년 2월 22일 열린 제15차 각의 의결 사항에 따라 3월 1일부터 연말까지 막걸리 제조에 백미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당시 쌀만을 사용해 막걸리를 만들어 온 양조장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던 재료인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료가 바뀌면 제조의 방법이나 관리가 다 달라져야 하는데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바로 백미 사용이 금지된 지 보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재무부 소속 양조시험소(현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는 밀가루를 이용한 양조법을 표준화하여 1962년부터 밀가루 탁주와 약주 제조 기술을 강습했다.


「국세청 기술연구소 100년 사」에 따르면 1960년대에 들어와 쌀 부족 현상은 심하였으나 미국 공법 480호에 의해 소맥분은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 대체 대상 원료인 소맥(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실험이 있었으나 소맥분(밀가루)에 대한 시험은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분말이었던 소맥분을 적당한 수분으로 증자 처리하는 방법이 관건이었고 시험 결과 만족할 결과를 얻었다. 이에 대한 시험 양조 결과를 토대로 제조기술자에게 기술 강습을 통해서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식량 사정이 급박한 상황이라 교육이 완료되기 전에 1963년에 쌀 사용을 금지하게 되었다. 결국 쌀로만 제조하던 탁주와 약주가 밀가루로 대체되면서 정부의 양곡 정책에 기여하게 되었다.

소맥분 탁주 개발의 이유 @국세청 기술연구소 100년사

1964년에는 사용 원료의 2할 이내로 백미 사용을 허용하는 조치가 취해져서 쌀 20%, 밀가루 80%의 막걸리가 나왔으나, 하지만 1966년 8월 28일부터 백미 사용이 전적으로 금지하고, 그 대신 밀가루로만 막걸리를 담그도록 했다. 이때부터 100% 밀막걸리가 생산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밀막걸리는 단맛을 내기 위해 발효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되었다. 그 결과 완전히 발효되지 않은 밀막걸리가 유통 과정에서 발효가 진행되면서 탄산가스가 생겨났고 소비자들은 이 탄산가스의 톡 쏘는 식감을 의외로 좋아했다.


1977년 크게 풍년이 들어 쌀 수확량이 사상 처음으로 4천만 석을 돌파하였다. 이로써 식량수급이 가능해지자 정부는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무미일(분식날)을 폐지하고, 쌀도 백미에 가까운 9분도로 도정하도록 하였다. 이어 밀가루 막걸리를 금지하고 쌀 막걸리를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쌀 소비억제 정책을 전면 해제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 쌀 막걸리를 허용하는 행정조치가 내려졌고, 14년 만에 쌀 막걸리가 다시 등장하였다. 그러나 쌀 소비가 늘어나자 1979년 11월 1일 막걸리에 쌀만을 사용토록 한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밀가루와 옥수수 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막걸리에 쌀만을 사용토록 한 행정명령 철회 기사 @조선일보(1979.11.02.)

막걸리는 쌀 생산이 풍족해지기 전까지 엄격한 규제를 받은 주류이다. 이러한 과거의 정책 변화는 막걸리 품질의 불안정성을 초래해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현재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부는 쌀 소비 활성화를 위해 막걸리와 전통주에 다시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다시금 쌀이 부족해지는 시기가 올 경우, 이러한 정책은 다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기적인 계획보다는 막걸리와 전통주를 중심으로 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지속적으로 쌀 소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막걸리나 전통주는 어떠한 가공품보다 쌀을 많이 소비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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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소믈리에타임즈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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