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칼리 글, 모니카 바렌고 그림, 『여전히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느 때와 어느 곳마다 다 다른 동사(verb)로 살아 왔나요. 그렇게 살고 있거나, 살고 싶나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함께 구축해 온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나요. 그리워하게 될 건가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펼쳐놓은 시간은 내게서 떠났거나 떠날 이의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을 것을, 알고 있나요.
떠났거나 떠날 이를 더는 만날 수 없는 이곳의 시간만이 내가 살아 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시간의 전부가 아닐 것을, 알게 됐나요.
이 모든 물음 앞에 세차게 고개를 내저을 수 없어서.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어느 때와 어느 곳마다 다 다른 동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의 말에 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리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홀로 끌어안고 있는 이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 본다. 이곳의 시간에서 “당신과 커피 한잔 함께 마시고 싶다”고 말하며 여전하지 않은 ‘당신과 나(TOI ET MOI)의 카페(café)’를 여전한 마음으로 오가는 이의 걸음 위에 두 손을 포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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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있었고, 당신과 함께 했었고, 당신과 함께 먹었고, 당신과 함께 맡았고, 당신과 함께 헤맸고, 당신과 함께 걷고 뛰었던 모든 ‘사랑’의 시간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만들었던, 당신이 내게 남겨두고 간, 우리의 기억 안에서. 당신 없이, 당신과 함께, 여전히 나는.
당신이라는 바다는 시간의 흐름과 방향을 거스르지 못하여 조금씩 나의 해안에서 멀어져가고 있지만.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을 했던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을 살았던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사랑’이었던 이곳에서, 여전히 나는.
당신이 없는 하루들을 쌓아갑니다. 당신과 내가 빚었던 천국의 기억을 헤아리며. 당신이 내게 두고 간 기억의 천국을 거닐며. 당신이 있는 하루들을 살아갑니다, 여전히 나는.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 최진영, 「홈 스위트 홈」, 『쓰게 될 것』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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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랑과 삶 때문에 깊게 헤메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독이면서 얕은 잠에라도 들고 싶은 밤. 그럴 때마다 펼치는 그림책에는 어떤 목적과 바람이 깃들 수밖에 없고.
지금의 내게 즉각적인 위로를 보내는 그림들로 푹 젖은 눈을 폭 감아주는 그림책.
지금의 내가 알아차리기 힘든 모호한 신호를 흐려진 눈 너머로 가리키는 그림책.
지금의 밤이 지나면 조금은 더 선명해질 안부를 머리맡에 살포시 올려두는 그림책.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이 모두가 <오후의소묘> 출판사를 통해 만나고 품었던 모니카 바렌고의 그림책 네 권에 관한 설명이자 고백처럼 느껴진다. 숱한 오늘과 모르는 내일마다, 내 어두운 밤과 방에서, 그럼에도 사람과 사랑과 삶의 편에 나와 함께 설 아름다운 그림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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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칼리 글, 모니카 바렌고 그림,『여전히 나는』, 정림/하나 옮김, 오후의소묘,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