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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pr 03. 2024

혼란이 특별함을 만든다

K무비에서 배우는 인생

한국 영화가 훌륭한 이유     


“한국 영화가 훌륭한 이유는 이런 영화를 탄생하게 한, 훌륭하지 않은 사회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 영화 평론가인 피어스 콘란의 지적이다. 한국 영화에 빠져 2012년에 한국에 온 그는 최근 펴낸 <필수는 곤란해>에서 혼란스럽고 암울한 한국의 현대사는 다양한 이야기 소재가 됐다고 말한다. 억압적인 정부 덕분에(?) 감독들은 에둘러 말하는 표현법을 터득했다고도 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마크 맨슨은 지난 1월 게시한 한국방문 소감을 담은 유튜브 영상에서 “짧은 기간 한국의 급속 성장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우울한 국가가 된 원인이다.”라고 진단한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사회에서 한국은 집단적인 정신건강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과학, 기술부터 영화, 음악, 스포츠까지 세계를 선도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혼란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항상 길을 찾았다'면서, '드물지만 특별한 회복력을 보여줬다'고 강조한다. 그가 한국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라며 덧붙인 결론이다.         


  

놀라운 한국의 현대사     


한국의 현대사는 빠르고 압축적이다.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와 성장의 발자취를 남겼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1960년대 한국은 아프리카 수준의 최빈국에 속했다. 분단과 이념 대결, 산업화와 고도성장,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개발도상국을 넘어 50여 년 만에 선진국 대열까지 진입하는 성과를 이뤘다.     


고난의 현대사를 겪으면서 한국인의 경험과 감정은 깊고 다양해졌다.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성은 시대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역동성으로 작용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성취로 표출된다. 1990년대 문화가 발전하고 한류와 K컬처가 태동한 배경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기  ⓒ김성일 



한국 영화의 역사와 위기    


한류와 K컬처를 이끌어온 3대 천황이라면 대중음악, 드라마와 함께 영화가 꼽힌다. K무비의 역사를 보면 작품의 면면이 화려하다. 영화 한류를 촉발한 강제규의 <쉬리> (1999)부터 한국영화의 위상을 단숨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박찬욱의 <올드보이> (2003), K무비 역사의 정점을 찍은 봉준호의 <기생충> (2019)까지,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최근 한국 영화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OTT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화계가 겪는 심각한 후유증이지만, <기생충> 이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대표작이나 문제작이 드물다는 지적은 우려할 만하다. 그렇다고 위기론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 영화 전성기는 1960년대. 영화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최고의 대중 오락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TV의 보급과 다양한 문화·오락 시설의 등장으로 침체기에 빠진다.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 등 시장 개방과 자유화 물결은 한국 영화계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후 설상가상으로 한국 영화 의무상영제도인 스크린쿼터마저 축소되는 상황에 이른다.)

       


한국 영화 위기론 시기에 1000만 영화로 등극한 두 영화. 희망의 신호일까.




한국적 리얼리즘 영화의 탄생          


한국 영화계는 절치부심, 돌파구를 찾아나가면서 체질 개선에 주력한다. 영화 한류의 시작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다양한 한국 영화의 모색과 질적 수준 상승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다. 사실적이고 사회적인 성향을 띤 독특한 색깔의 한국 영화 모델이 만들어진다. 이른바 ‘한국적 리얼리즘’. 박광수,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국적 리얼리즘 영화는 단순화하면 개인보다는 공공, 예술적 미학보다는 사회와 시대성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말한다. 정치·사회·역사 등 한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상을 독창적인 스타일 속에서 담아낸다. 분단과 남북 대치, 압축 성장과 빈부격차, 민주화와 이념 갈등 등 뚜렷하고 차별화된 이야기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 영화만의 독보적 색깔이자 매력이라고 할 것이다.     


2000년대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활발한 제작과 투자, 관객 증가와 흥행 성공, 국제적 인정 등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산업 형태를 확립한 것이다. 영화적·산업적·사회문화적 의미에서 한국 영화의 생태계와 선순환구조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위기는 반복되는 것일까. 팬데믹은 또 한번 영화의 위기를 불러오고, 여전히 그 위기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마크 맨슨의 지적처럼 우리는 또 길을 찾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영화 3가지로 이해하기  ⓒ김성일

          


영화에서 배우는 인생     


영화는 고단한 시대와 혼란스러운 사회를 반영한다. 압축 성장과 격변의 민주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현대사는 여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경험과 스토리가 됐다.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문화적 자산과 자양분은 풍부하고 다양해졌다. K영화 콘텐츠의 차별화된 지점과 위치를 확보한 셈이다.     


인간의 성장 과정도 유사하다.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는다. 상처와 트라우마는 두고두고 인생의 쓴맛을 곱씹게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배우며 한 단계 두 단계 성장한다. 혼란과 방황의 시절을 겪으며 내면은 단단해지고, 자기만의 안목과 생존의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다. 그만큼 살아 있는 경험은 생생하고 직접적이다. 책이나 간접 경험으로 얻는 지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오늘 힘들고 외롭다고 실의에 빠지거나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위기와 혼란을 우리 인생의 디딤돌이나 버팀목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은 막막하더라도 잘 이겨내면 나만의 독특함과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만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나서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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