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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Dec 13. 2020

방콕 여행은 ㅇㅇ이 없다

 - 코로나 19 시대, 여행의 한 방식에 대하여

코로나 19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의 일상화다. 하늘길이 막혀 국가 간 이동이 사실상 정지한 상황에서 여행과 관광 분야는 이런 현상이 극단적이다. 여행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적인 이동에 가까운데 코로나라고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그간 상당 부분의 여행 수요는 사실 비대면 방식을 통해 해소해왔다. 바로 TV의 여행 프로그램이나 SNS의 각종 여행 영상과 콘텐츠들이다. 피렌체나 바르셀로나에 있는 현지 가이드와 라이브로 연결하여 안방에서 여행하는 ‘랜선 투어’도 히트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방구석 여행이다.


코로나 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시대, 이런 ‘방콕 여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방콕 여행은 여행의 한 방식으로 괜찮은 건지, 혹시 진정한 여행 정신의 적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위대한 여행가가 방콕 여행자였다고?     

논란의 인물은 마르코 폴로다. 그의 여행기는 동양 문화를 처음 서양에 알리면서 세계사적 대변혁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콜럼버스의 항해와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실제로 갔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으로 20년이 넘도록 고국을 떠나 있었고 그중 중국에 17년 동안이나 체류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뭘까. 쿠빌라이 칸의 몽골제국에서 중용되었다고 하는데 보존이 잘 된 중국의 고문서 어디에서도 그의 행적을 찾기가 힘들다. 중국을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면서도 만리장성이나 한자, 전족(纏足), 다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중국 학자 프랜시스 우드 같은 몇몇 저자는 마르코 폴로가 방콕 여행작가는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문이 운영하는 상점이 있던 콘스탄티노플이나 고향 근처 어디에서 당대의 정보를 집대성한 거 아니냐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1254~1324)와 <동방견문록>의 한 페이지




어떤 장소에 갔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반드시 ‘신체적 이동’이 필요한 것일까. 실제 가봤더라도 여행자가 어떤 장소를 대체 몇 킬로미터나 돌아다니고, 얼마 동안 체류해야 그 장소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           


한평생 똑같은 장소에서 살았다고 해서 그곳을 모두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3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에 대해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다닌 학교나 직장 근처,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살아본 동네 정도가 익숙할 뿐이다. 이제 시골보다 서울에서 산 날이 더 많아졌으니 서울이 대충 어떤 도시인지 외국인들에게 조금 얘기해 줄 수는 있다. 그러니 모르는 건 물론 아니다. 우리가 해외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는 경우라면 더할 것이다. 기껏해야 며칠간, 사진 찍기 좋은 명소 몇 군데를 후닥닥 돌아보는 게 고작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거기를 잘 아는 것처럼 '가봤다'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행과 '비(非) 여행'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알 수 있다.     

여행했더라도 대충 지나치거나 잊어버린 곳이 있을 수 있다. 직접 여행은 하지 않았더라도 책이나 방송, 귀동냥, 각종 정보 등을 통해 친숙한 장소도 있다. 우리는 잠깐이라도 스친 곳은 자신 있게 가봤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그 지역을 상당히 알더라도 가봤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은 역시 직접적인 '신체적 이동'인 것 같다.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는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여행이 내가 모르는 어떤 도시나 나라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이냐는 것이다. 답은 그 반대라면서, ‘비 여행’의 일종인 ‘방콕 여행자’를 옹호한다. 비 여행은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지만 거기에 직접 가지 않을 뿐이다.     


바야르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자기만의 여행을 하라고 권한다. 설혹 마르코 폴로가 방콕 여행자였다 해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의 몽상을 마음껏 펼친 것을 적극 변호하는 것이다. 바야르의 결론은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한 ‘총체적인 시각’이다. 어떤 장소를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굳이 신체적 이동이 아니더라도 '심리적 이동, 정신적 이동'으로 충분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코로나 시국에 불가피한 선택이든, 체질적으로 좋아하든 방콕 여행에는 좋은 점이 많다. 언제나 원할 때 가능하고 가성비가 뛰어나다. 여행에 따르는 짐 싸기나 이동의 번거로움, 집 나설 때 가끔 겪는 ‘개고생’ 같은 걸 피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방콕이든 랜선이든, 여행의 긍정적 의미는 확실히 크다.     




코로나 19 시대에 ‘어떤 곳에 여행한다’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여행이란 타자와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한 가지 여행 방식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결론적으로는 여행의 목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사나 연구 같은 목적이 뚜렷한 여행이라면 현미경이 필요하다. 학자나 작가의 눈을 가지고 총체적인 시각을 유지한 채  지역에 대한 사실관계, 정확한 지식과 심층 정보에 집중다. 일반적인 여행자는 다르다. 나만의 개별적인 경험과 구체적인 느낌이 중요하다. 어떤 장소를 둘러보더라도 자기의 눈과 관심사에 따라 남들과는 다른 특별하고 차별화된 체험을 원하는 것이다. 요즘 여행이 미식 탐방, 미술관 방문, 액티비티 체험처럼 다양하지 않은가.      

  



또한 여행은 현장성과 우연성이 강하다.     

뜻밖의 만남, 예기치 못한 순간, 기억에 남을 인연이 여행을 신나고 재미있게 만든다. 이런 설렘과 기대감이 여행의 본질 아닐까. 실제 여행하면서 느끼는 '디테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개인의 고유하고 소중한 자산이다. 오래된 골목길 가게의 은은한 향기와 정갈한 분위기, 소박한 음식을 내주던 주인의 정겨운 눈길, 불의의 악천후에 들른 해변의 카페에서 읽은 따뜻한 시 한 줄...  여행책에서 찾을 수 없고 방콕 여행이나 랜선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미지의 세계를 모두 알려는 생각이나 욕망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작고 소박한 경험으로 자신의 세계가 풍요롭고 행복해지면 되는 것이다. 여행은 자기가 경험하는 만큼 느끼고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찐 여행'이란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와 현장에 있는 건 분명하다. 다만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이라면 어떤 여행 방식도 용서받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비록 방콕 여행을 할지라도 코로나 19가 종식되어 마음껏 여행하는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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