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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an 31. 2021

90년대생 아들과 떠난 3가지 여행

코로나19 고개를 몇 번 넘다 보니 1년이 순삭이다. 2021년 1월 아들과 둘이서 1박 2일 한겨울 엠티를 떠났다. 중년의 베이비붐 세대와 MZ세대 아들의 단합대회라고 할까. 2020년 1월 말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1년이 될 무렵이다. 가족여행의 부킹 담당은 검색에 능한 아들. 십여 분만에 찾아낸 강화도 서남쪽 끝의 숙소는 ‘낙조가 예쁜 바닷가 독채 펜션’이었다. 늦게 도착해 해지는 풍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만의 단합행사를 치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코로나 1년을 돌아보면서 아들과 함께한 몇 번의 여행, 색다른 동행이 떠오른다.     


1. 1년 전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가 이렇게 길어지는 것을 보면 그래도 여행운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터지기 직전에 해외여행을 찍었으니 말이다. 2020년 1월 말에 3박 5일로 떠난 가족여행 추진의 전권은 아들이 맡았다. 모든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기획하며 상세 일정을 체크하는 여행사 역할이다. 원하는 프로그램이 가능한지, 날짜와 동선, 가격과 세부적인 계약관계를 알아보느라 아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귀찮을 법도 한데 전혀 아니었다. 아주 설레고 신나는 표정으로 여행 준비를 즐기는 것이었다. 하긴 모든 여행은 가기 전부터 즐거운 법 아닌가. 저녁에 진행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우리 부부는 최종 결제를 했다. 기획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제안이나 조언을 곁들이면 가능한 만큼 전체 일정에 반영되어 확정했다.      


아들이 강추하고 우리 부부도 대만족한 베스트 넘버1은 '쿠킹 클래스'였다. 베트남 로컬푸드 몇 가지를 직접 만들어보고 식사로 함께 즐기는 특별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강을 면해 있어 전망이 확 트인 현지 가옥 마당에서 우리는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날씨는 온화하고 강에서 가끔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젊은 베트남 여성도 친절하고 상냥해서 기분이 좋았다. 


숙소도 만족스러웠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는데 가격도 저렴한 편인 데다 베트남 가정집의 소박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동할 때는 동남아의 우버라고 할 ‘그랩’이 필수예약한 야간 유람선 투어가 악천후로 두 차례나 취소될 때는 숙소에서 배달 음식을 먹으며 급히 대체 일정을 알아보기도 했다. 


3일간 밀착해 지내다 보니 50대 부부의 잔소리가 늘어난 모양이다. 은근히 짜증 섞인 아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각자 일정을 전격 제안했다. 우리 부부와 아들, 두 팀으로 나누어 자유시간을 보내자는 말에 녀석의 표정이 확 살아난다. 우리도 사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다. 20대의 '진격' 스케줄대로 쫓아다니는 게 바빴으니 말이다. 


우리는 아들에게 이용법을 배운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시내로 이동했다. 쌀국수 점심을 먹고 해변에서 커피를 마셨다. 날씨는 흐렸지만 바다를 보니 자연스레 여유 모드에 빠져든다. 멍 때리기 딱 좋은 곳이다. 근데 아들은 시내 쇼핑을 하며 계속 돌아다닌 눈치였다. 역시 젊음이 좋다. 노는 것도 젊어서 하라고 하지 않나. 세대 따라 사는 방식, 즐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절감한 여행이었다.     


'쿠킹 클래스' 진행 모습과 흐린 바닷가의 멍 때리기 현장



2. 10월의 고향 방문도 기억에 남는다. 장거리 운전 여행이다     


할머니가 계신 전남 영광까지 서울에서 4~5시간의 먼 길이지만 아들은 설렌 표정이다. 운전에 재미가 붙었기 때문이다. 둘이서 번갈아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다. 아직 초보에 학생이지만 기회만 있으면 운전대 잡기를 자청한다.   

   

운전면허를 딴 아들은 군 제대 후 내게 본격적으로 도로 운전 교습을 받았다. 운전 교습 중에 부부든 가족이든 여차하면 싸우기 쉽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로 '버럭남'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아들은 기계 다루는 솜씨나 운전 감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왕초보 치고는 그런대로 안정감이 있는 편이었다. 욱하려는 때가 있긴 했지만, 내 초짜 시절을 상기하며 속으로 '친절남'을 두 번쯤 되뇌었다. 속도가 높아지면 "슬로!!"를 외치는 것이 가장 잦은 지적이었다. 상암동 넓은 도로와 자유로, 성북동 골목길과 북악 스카이웨이까지 10여 차례 거리로 나섰다. 기본을 통과하자 가속과 정지를 연습했다. 예전에 ‘코너링이 좋아 운전병에 특별 선발되었다’라는 얘기처럼 숙달 운전의 백미는 코너링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뒷자리에 앉은 박 사장(이선균)이 물컵의 기울기로 기택(송강호)의 노련한 커브길 운전실력을 간파하는 대목도 나온다.      


그런데 운전의 기본이라면 부드러운 가속과 정지 아닐까. 뒷자리의 회장님이 차의 움직임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숙면에 빠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회장님 운전'인데 우리는 ‘아트 드라이빙’  ‘아트 브레이킹’이라고 이름 지었다.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살짝 나누어 밟으면서 차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특히 정지할 때 마지막 부분에서 차가 덜컹대는 느낌이 없어야 한다. 신경써서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몸에 저절로 배게 되는 습관이다.   

   

운전은 인생을 닮았다. 급하게 서두르면 위험한 상황이 생기거나 때로 사고가 난다. 안전과 양보의 운전은 조금 느릴지 몰라도 심신이 편안하다. 먼 길 갈 때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 보다 친구이자 동반자로 함께 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들과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대화를 하게 돼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다. 가족 간의 정과 유대감도 절로 깊어진다. 어머니 홀로 계신 시골에 도착하여 보내는 저녁 분위기도 한층 고조된다. 운전을 함께 한 동지의식에다 시골 밭의 고구마를 캐며 수고한 노동의 보람이랄까. 청명한 가을, 하늘의 별빛이 내리는 앞마당에 바비큐 판이 펼쳐졌다. 가을이 주는 자연의 선물이 풍성하다. 한우와 전어, 대하가 맛있게 익어간다. 디저트는 달콤한 군고구마.    


깊어가는 가을로 함께 한 여행이 즐겁다



3. 2021년 1월의 강화도 엠티에서는 세대 충돌이 무엇인지 절감했다.      


다시 둘만의 시간, 우리는 벼르던 캠핑용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겁나 두툼한 토마호크 스테이크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 마디로 요즘 낭만 캠핑의 극강 상징. 특히 코로나 와중에 인기 있는 차박이나 야외 활동에 딱 어울리는 메뉴다. 근데 이 두꺼운 고기를 어떻게 맛있게 굽나. 둘 다 처음인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들은 상당히 기대한 듯 미리 요리법도 공부하며 준비했다. 약간 멈칫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새롭고 놀라운 방법을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한다.      


불멍에 빠질 정도로 숯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들은 검붉게 이글거리는 숯더미 바로 위에 토마호크를 살짝 던져 넣는다. 석쇠나 그릴 없이 직화 중 직화였다. 고기에 불과 재가 바로 달라붙었다. 헉! 나는 잠시 충격에 빠졌고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고기는 구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구운 고기를 먹을 자신이 없다... 고 했다. 중년의 보수 세대가 저항(?)하자 아들도 처음 시도라서 그런지, 약간 멈칫하며 물러섰다. 잠시 거시기한 시간을 지나 결국은 석쇠 위에서 굽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숯 위에서 시꺼멓게 타는 고기는 뭔가 먹기에 꺼림직했다. 암 유발이니 어쩌니 말도 많지 않은가. 90년대생의 과감한 시도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몸의 반응을 털어놓았다. 어쨌든 시도가 좋았고, 아버지는 절대 생각 못했을 거라며 솔직한 마음을 덧붙였다. 알고 보니 ‘케이브 맨(caveman) 스타일’이라고, 원시시대의 동굴생활을 따라한 방법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육즙이 가득한 불맛이 느껴진다는데... 역시 ‘쉰세대’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혹시나 이벤트성으로 한번 구경하는 건 몰라도 말이다.

 

그 날의 현장과 흔적이 약간 남은 토마호크. 어쨌든 맛을 좋았다.


싸한 분위기 뒤에 친해지는 걸까. 술이 갑자기 맛있어졌다. 와인과 복분자를 마시고 고소한 땅콩 막걸리도 비웠다. 우리는 인생의 방황기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대학시절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은 채 3학년을 마치고 다음 학기 등록을 포기했다. 38년 전이다. 그 겨울 눈이 많이 내린 두메산골에 틀어박혀 세상을 완전히 잊고 지냈다. 3학년을 앞둔 아들 또한 좋은 학점과 온갖 스펙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게 자기의 인생인지 고민이라고 한다. 진정 자기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찾고 싶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요즘은 중학교 시절 푹 빠졌던 음악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다고 말한다.      


그 겨울, 내 인생의 진로를 정하고 3년 뒤에 평생의 직업을 시작했다. 지금 그때의 심정으로 아들의 꿈과 인생길을 응원한다. 조금 늦거나 돌아가더라도 모든 인생에는 자신의 길이 있는 법이다. 90년대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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