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의 쿠팡 사태는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과대 포장과 쌓이는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하다. 여기에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알려지고 안타까운 희생이 따랐다. 나 하나 쿠팡을 나간다고 눈이나 깜짝하겠어? 그래도 뭔가 액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탈퇴를 눌렀다. 쿠팡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아내는 일단 스테이하며 관망 자세.
우리는 주말 아침으로 샐러드를 즐긴다. 금요일 저녁에 손만 까닥하면 다음 날 새벽 현관 앞에 상차림이 준비된다. 그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순간 전설의 K-배송을 거부하기 어렵다. 사실 나도 급한 건 이제 아내에게 부탁한다. 요즘 내 쇼핑 생활은 어쩐지 지리멸렬한 느낌이다.
쿠팡은 단순한 이커머스 업체가 아니다. 콘텐츠 사업(OTT)에 뛰어들었고, 이미 여행 기업이다. 쿠팡 트래블은 ‘여행으로 만드는 행복한 일상’을 내걸고 핫한 여행 신상이나 국내외 특가상품을 본격적으로 내놓고 있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 구글에서도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의 숙소를 바로 예약할 수 있다.
모두 여행이 일상에 성큼 다가왔다는 신호다. 여행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과 바로 연결된다.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코로나19로이동이 멈추고 어느샌가 거리두기가 익숙해졌다. 여행이 사라진 그 시간에, 우리는 오히려 여행의 가치와 의미를 더 크게 느낀 건 아닐까. 늘 가까이 있는 건 그 소중함을 모르거나 잊고 살기 쉽다. 질병과 재난은 인간에게 시련을 주지만 기억에 사무치는 교훈도 주지 않던가.
코로나19로 달라진 여행 트렌드 중에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점을 주목한다. 원래 여행은 ‘일상의 거주지를 일시적으로 떠나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24시간 이상 체재’를 Tourist 정의(1984)에 포함했다. 이번 바이러스는 참, 무섭고 질긴 놈이다. 지난 1년 반 이상 가장 흔하게 들은 말이 이동이나 여행 자제령이 아닐는지.
이제 일상의 공간에서 여행을 즐기면 어떨까. 책에 나오는 정의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행동하고 누리는 방식이다. 여행의 호흡은 갈수록 짧아진다. 집이나 동네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거창한 목적지가 아니라 소소한 과정을 즐기는 일이 행복이다. 일상의 소박한 순간순간에 우리 삶의 의미가 빛나기 때문이다. 바로 나를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시간을 갖는 것, 여행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 아닐까. 바이러스는 외려 여행의 본질과 정신을 일깨운 셈이다.
코로나로 이동이 멈춘 시대에 우리는 다양한 여행을 즐기게 됐다. 몇 년 전 다녀온 여행이 불현듯 지금 이 순간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옛 사진을 뒤적이고 그날의 아스라한 기억과 느낌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브런치에는 이런 글이 많다. 이제 보니 우리는 새로운 여행을 꿈꾸면서 계속 떠나기만 했지, 잠시 멈춰서는 걸 잊은 건 아닐까. 여행 사진은 쌓여가지만 한 번 본 후 파일로 잠들어 있기 일쑤다. 이제야 여행의 진정한 맛과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 같다.
청계천 걷는 길의 풍경
충무로역 근처 <한국의집>의 청우정(廳雨亭, 빗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정자). 사육신인 박팽년의 집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앞으로 여행은 우리 생활과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여행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날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동네 산책에서 둘레길 걷기로, 카페 순례에서 맛집 기행으로, 자유로운 혼행에서 소그룹 투어로,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히트상품인 '랜선 투어'는 미래 여행의 한 모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공간을 넘어 간편하게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니까.
이번 주말에도 우리 부부는 샐러드를 준비한다. 신선한 재료와 갖은 소스로 식탁은 다채롭고 풍성해진다. 하나씩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샐러드를 먹으며 우리는 어디론가 잠깐 떠날 궁리를 한다. 떠난다는 말 자체도 조금 부담스럽다. 그냥 훌쩍 다녀오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