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IT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2013년 공무원교육원에서 10주 간 열린 민관협력 교육과정의 같은 분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공무원 막바지 경력을 향해 가고 있었고(2020년 퇴직), 그는 IT 중소기업을 10여 년째 운영하는 패기 넘치는 CEO였다.
거의 매주 뒤풀이 술자리가 이어지는 교육 중에 우리는 친해졌다. 끝난 후에도 두어 차례 따로 만나다가 이번에 근 10여 년 만에 재회한 셈이다. 단기간에 친해졌어도 오랫동안 사귄 친구는 아니다. 막상 얼굴을 대하니 낯설거나 어색한 구석 없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점심 후에 친구 사무실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30여 년 공무원 생활에 전념한 나와 기업 한 길만 걸어온 친구, 서로 통하는 지점이 뭐였을까. 사람을 넓게 만나지 않는 내가 어쩌다 그 친구 만날 생각을 했을까. 그날의 만남을 돌아본다.
(1) 노는 물이 다른 친구를 만나다
퇴직 후 수많은 인간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정리된다. 어릴 적 친구들 또한 각자 살아온 길이 달라지면서 만나도 어쩐지 데면데면해진다. 나이 들면 자연스레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는 이유다. 내 주변에도 공무원이나 유관 기관에서 일한 사람이 다수다. 대화 주제와 관심사에 공통점이 많고 편하다.
인생 후반부에는 일상의 활력과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일이나 여가 활동과 함께 새 친구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 중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고, 관계를 되살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특히 노는 물이 다른 사람과는 색다른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자극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판교의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연락을 취한 이유다.
그 친구는 미래가 보장된 삼성전자를 15년 만에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운명의 부름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나처럼 평탄한 생활을 선호하는 사람과 달리 그는 파도가 요동치는 삶에 들어섰다. 지나온 길이 힘들고 부침도 따랐지만, 자신이 개척한 도전의 경험을 귀중한 자산으로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2) 마음이 통하는 점을 나눈다
민간과 공무원 간에는 일종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민간은 공무원을 딱딱하고 권위적이며 그들만의 틀에 갇힌 그룹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공무원은 자기 마케팅과 영업 마인드가 있는 민간을 다소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 공무원 하면 흔히 ‘갑질 근성’이라는 단어가 연상되고, 민간은 이해관계에 민감한 듯한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약간 달랐던 것 같다. 내가 본 그 친구는 특유의 자기 자랑이나 영업 성향이 강하지 않았다. 열정과 의욕이 넘쳤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내가 약간 ‘공무원스럽지 않은’ 공무원이어서 기억에 남았다고 말한다. 10여 년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그는 종종 카톡에 뜬 내 생일날 커피 쿠폰을 보내오곤 했다. 감사와 배려를 표현할 줄 하는 사람이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특히 공무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마음이 늘 기억 속에 남았다. 나도 답례 쿠폰을 보냈고, 우리는 가끔 안부를 묻는 통화를 하면서 관계를 이어갔다.
(3) 살아갈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 친구는 수차례 실패를 반복하며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지 판교역 근처에 임대료가 월 천만 원대인 사무실이 따로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 대표라도 우리 같은 월급쟁이 출신이 보기에는 큰 수입이라 놀랍다. 하지만 그는 머지않은 시기에 은퇴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드러냈다. 워낙 산을 좋아해 주말이면 어김없이 당일치기나 무박 2일의 산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고 한다. 수도권에 200~300평 규모의 개인 정원을 가꾸는 게 꿈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병원에 일정액을 기부하는 일 또한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인문학 공부, 독서와 글쓰기, 대학 강의로 이어지는 자유인 생활에 빠져있다고 했다. 브런치에 은퇴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고, 최근에 대학 강의 경험을 『K컬처, 삶을 말하다』란 책으로 펴냈다고 소개했다. 지난 2년 여 간의 결실이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속마음을 얘기했다. 평생학습과 퇴직 후 꾸준한 공부가 결국 성장에 자극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평생 현역은 모든 은퇴자들의 꿈일 거라면서 그도 크게 공감한다. 자신 또한 박사학위까지 마쳤고 틈틈이 출강하고 있다고 전한다.
오늘도 배우는 인생
같이 나이 들어가는 친구는 긴 인생 여정에 힘과 응원이 된다. 가까이는 일상의 경험과 정보를 나눌 수 있고, 삶의 여러 고민에 대해서도 조언과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친구는 성향이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 또한 내 삶을 비춰보는 색다른 거울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삶 또한 다양하다. 세상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배우는 게 인생이다.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 친구와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