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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Dec 03. 2024

은퇴한 아저씨들이 발리에 간 사연

[발리 여행-상] 은퇴자들이 사는 법과 여행의 의미

주변에서 퇴직한 남자들끼리 발리엔 대체 왜 가느냐는 말이 많았다. 신혼여행이나 가족 휴양지로 적합한 곳 아니냐는 얘기다. 지난 11월 말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7명의 모임 회원이 발리를 다녀왔다. 절반은 자유 일정이 포함된 4박 6일의 패키지 투어다.



어떤 곳은 상상의 여행지가 된다


막바지 현역이 2명 있긴 하지만 평균 연령은 60이 넘었고 다수가 ‘연수자’(연금 수급자)다. 2004년 시작한 모임은 어언 20주년을 맞았다. 태풍이 지나가는 잔뜩 흐린 날 우리는 ‘발리’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가 아는 인도네시아 발리가 아니라 끈끈한 열기와 알코올 향이 가득한 서귀포의 술집 이름이다. 일로 만나 친해진 몇몇을 빼고 상당수가 초면이던 우리는 거기서 음주가무와 함께 형님 동생으로 의기투합했다. 사는 곳은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에 걸쳐 달랐지만, 지금까지 일 년에 네 번 전국 각지를 오가며 1박 2일 모임을 계속했다. 평생 동지 같은 인연이다.


세계적인 그 발리와 직접 상관은 없어도, ‘발리’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았다. 어떤 이름, 어떤 장소는 평생 잊히지 않고 가슴속에 스며들 듯 자리 잡는다. 그렇게 그리움 속에서 내내 상상의 여행지가 된다. 우리가 지난 20년 간 만남을 지속하면서 발리는 어느새 꼭 가봐야 할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


이번 여행 중에는 세계 일주를 떠난 기분마저 들었다. 일 년에 모임 한 번은 해외에서 하기로 했는데, 후보지가 봇물처럼 쏟아진 것이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먼 곳을 다녀오는 게 좋다면서 아프리카와 남미, 튀르키예와 그리스,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화제에 올랐다. 경비와 일정 등 현실적인 장애가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하며, 결국엔 용두사미처럼(?) 동남아로 좁혀졌다. 한데 어울리면서 우리는 서로 사는 모습을 나누고, 꿈꾸는 곳을 이야기하며 이렇듯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 은퇴한 자유인들의 일상이다.



세상에는 ‘극한 직업’이 있다


40대 한창 무렵에 모임을 시작한 우리는 드디어 그리운 여행지 ‘발리’행에 나섰다. 취소 요건이 까다로운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를 출발하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초 건강 문제로 포기했던 회원이 막판에 합류하기로 한 게 시작이다. 며칠 후엔 모임의 큰 형님이 불참해야 할 긴급한 집안 사정이 발생했다. 해외여행도 마냥 속 편하게 다녀오기 쉽지 않은 게 60대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주변의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이든 총무는 잡다한 일을 도맡아 고생한다. 우리 총무는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다. 평소엔 연락과 돈 관리가 기본이고, 막상 모임이 열리면 회원들의 숱한 요구와 민원(?)을 즉석에서 원만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번 같은 패키지 투어는 일정 변경이나 취소 수수료 납부 등 귀찮고 자잘한 일이 따른다. 특히 자유 일정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총무의 역할과 활약이 절대적이다.


퇴직할 무렵 60대 남자들의 사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성격이 ‘대인이나 호인’ 같은 사람도 있지만, 자기만의 사는 방식이 굳어진 경우가 많다. 나이 들면 심신이 약해지면서 위로받고 싶어 하거나 자기 요구를 앞세우게 된다. 때로 소소한 의견 대립이나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여행 중에는 매번 변수가 생기고 환경도 낯설어 예민해지기 쉽다. 서로 간에 양보와 배려, 팀워크가 꼭 필요한 이유다.


이 모든 걸 받아주는 사람이 총무다. 우리 모임의 총무는 막내가 맡아 거의 종신직에 가깝다. 평소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열성파다. 우리는 총무를 최대한 극진히(?) 모시려고 한다. 호칭도 ‘총장’으로 격상하고 사실상 ‘리더’로 추앙하면서 매 순간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혹시나 ‘총장’이 변심해 극한 직업을 사퇴하면 모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함께 어울리는 세상


여행은 익숙한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 60대 아저씨들끼리 발리를 여행하면서, 뜻밖의 발견과 기억이 여운처럼 남는다. 성격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모임은 늘 세상살이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그런 모임이 있다. 이런저런 만남 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고 배우며,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함께 어울리는 세상 속에 주고받는 재미가 있고, 인생을 사는 의미도 한층 깊어지는 것이다.



* 본격적인 발리 여행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계단식 논과 정글이 경이로운 Ubud(우붓) Alas Harum의 Swing 체험은 발리 여행의 필수 코스다





* 표지 사진: Tirta Gangga 왕궁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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