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소설 『모순』에서 배우는 인생
어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묘한 흥분과 설렘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내 일상과 삶이 말할 수 없는 충만감으로 차오르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단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유와 각성의 기회를 내게 던져주기 때문일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그랬고,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서도 한참 동안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근에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문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내 속마음을 콕 찌르는 부분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21쪽)
나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행복과 불행을 모두 수용하는가. ‘운명을 사랑하라(아모르파티)’는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까지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부하고 싶은 숱한 삶의 조건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
소설의 주인공은 25세의 미혼여성 안진진. 억척스러운 장사꾼 어머니와 굴곡 심한 삶을 거쳐 행방불명 상태인 아버지, 조폭 보스가 꿈인 남동생이 가족이다. 얼핏 들어도 변화무쌍한 가정사가 떠올려진다. 반면 어머니와 일란성쌍둥이인 이모는 엘리트 남자와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며 사뭇 다른 인생행로를 걷는다. 주인공은 극단으로 나뉜 어머니와 이모의 삶, 그리고 대비되는 두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 같은 사랑을 하며 모순투성이인 삶에 대해 고민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분투하는 삶’과 ‘지리멸렬한 삶’을 비교했다. 분투하는 삶은 지칠 줄 모르는 활력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들에게서 본다. 자신의 의지든, 운명에 휩쓸리든 변화와 모험의 세계 속 거친 광야를 누빈다. 그들의 생존방식 중 하나는 “...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켜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극복의 힘을 얻곤 하던 어머니의 (불행) 과장법...”(233쪽)이다.
이런 삶이야말로 고달픈 일상을 헤쳐 나가는 자기 위안이자 희망 암시의 생존법이 아닐까 싶다. 격동의 현대사를 헤치고 살아남은 한국인의 생존전략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욕과 희망을 키워갔을 것이다.
...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64쪽)
두 번째 지리멸렬한 삶이란 무엇일까. 아무런 궁금증이 없는 삶이다. 우리가 보통 ‘심심한’ 사람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정답’만을 얘기하거나 무미건조한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함께 있어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 시간이 따분해질 뿐이다.
단조로운 삶은 또한 단조로운 행복에 이른다. “... 탐험해야 할 수많은 인생의 비밀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178쪽)”이다. 너무나 멋진 인생 계획표를 가지고 있어도 그의 삶은 기교적이고 인위적이다. 인간적인 맛이나 정이 부족한 채 변화와 재미가 없는 일상을 반복한다.
... 이모부는 몹시 심심한 사람이었다.... 심심하다는 것은 사람이 싱겁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서 언제라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29쪽)
소설 『모순』은 1998년 초판이 나온 지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양귀자 소설의 힘과 저력을 과시한 작품이다. 많은 독자에게 ‘인생 소설’로 사랑받던 중, 최근에 역주행하며 거침없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복귀했다.
단편을 이어 붙인 듯 잘 읽히면서도 강렬한 인물들의 서사와 흥미로운 에피소드에 금방 매료된다. 삶을 들여다보는 구절들이 수시로 독자의 가슴을 치면서 기분 좋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우리의 고단한 삶에 힘과 위로를 주는 문학의 힘이 느껴진다.
...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296쪽)
작가는 ‘모순’이야말로 생의 비밀이라고 작가 노트에서 말한다. 인생은 행복과 불행, 선과 악, 풍요와 빈곤 같은 수많은 모순 속에 존재하고, 우리의 삶은 그런 숱한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보며 한 번뿐인 삶,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야말로 인간이 아닐까 싶다. 100인의 무덤에는 100인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주어진 몫만큼의 삶을 산다. 인간이란 이름은 같지만 그들의 삶은 온갖 변화와 변신을 거듭한다. 수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229쪽)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눈앞의 가족이나 친구를 보면서도 내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의 처지가 조금만 달라지면 그와 나의 삶 또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에서 인생을 배우는 이유다. 오늘도 사람들을 보며 겸손함을 생각한다.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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