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아내의 절친 딸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이 엄숙한 의례의 자리가 아니라 신랑 신부가 주인공인 축제라는 게 실감 났다. 주례 없이 가족과 친구, 하객들이 함께 어울리며 한바탕 즐기는 흥겨운 자리였다.
퇴직 3년 차가 되니 경조사 참석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 현역 때 경조사는 네트워킹의 의미가 컸다. 이리저리 바쁜 주최 측보다 손님들끼리 의기투합해 안부를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일이 많았다.
특히 결혼식이라면 남자 하객들은 보통 ‘출석 도장’ 찍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기 일쑤였다. 친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한잔 마시는 게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어둑할 때까지 2차를 띈 적도 있었다. ‘한창 술 마시던 시절’ 나와 주변의 철 모르던 남자들 이야기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식을 지켜보는 일은 드물었다.
오랜만에 결혼식을 직관하니 색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이 유난한 건지 눈물 흘리는 여자들이 유독 많았다. 처음, 양가에서 촛불을 밝히는 시간에 신부 어머니가 눈물을 슬쩍 훔치기 시작한다. 이어서 입장한 신부 또한 눈물을 보인다. 한번 터진 눈물샘인지 식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계속 눈가가 촉촉하게 젖는다.
이어진 신부 친구의 축사 시간에 깜짝 놀랐다. 한참 말을 이어가던 학교 친구(여성)가 난데없이 울컥 눈물을 쏟았기 때문이다. 잠시 진정하고 축사를 이어가더니 재차 한참을 울먹인다. 문득 옆을 보니 아내가 손수건을 꺼내 눈 주위를 닦고 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결혼식에선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남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렇게 기쁜 날, 즐거운 날에 왜들 그렇게 눈물을 흘리실까. 확실히 여자들의 감정 표현이 자연스럽고 풍부한 것 같다. 매사 무덤덤한 남자들, 특히 올드세대 남자들은 공감과 표현을 억제하는 게 미덕인 것처럼 살았다.
결혼식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그런 날을 대하는 여자들 마음은 더욱 특별하지 않았을까. 가슴 깊숙이 숨어있던 온갖 기억과 생각들이 무의식적으로 일시에 표출한 탓 아닐까 싶다. 아마 어릴 때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쌓였던 애틋한 감정이 담겼을 것이다.
아내 또한 신부의 이름을 지어준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혹시나 아이가 자라면서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가슴 졸인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청첩장을 받고는 자기 일처럼 흐뭇해하면서 마치 친딸인 양 뿌듯해하기도 했다.
반면 남자들은 대조적이다. 특히나 이날의 신랑은 눈길을 끌었다. 연신 싱글벙글 얼굴 가득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우리 세대에 비하면 감정 표현이 너무나 풍부했다. 더구나 옆에서 눈물을 겨우 삼키는 신부와 퍽이나 비교됐다. 요즘 신랑들은 대개 그런 건지, 이날의 신랑이 특이한 건지는 알 길이 없다.
그 순간, 미안하지만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에 빠졌다. 저 마음, 저 사랑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신랑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과연 뜨겁고 강렬한 사랑이란 약효가 어느 정도일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불현듯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지난 1월에 참석한 도서관의 영화 심리여행 강좌에서 다뤄진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2019). 잘나가는 연극 연출가인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사랑을 위해 배우 생활을 포기한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아들이 있지만 결국 이혼을 결심한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열렬히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서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다. 짜임새 있는 각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흡인력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영화로,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만물이 변하는데 과연 사랑이라고 변하지 않을까.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변한다’보다 시간과 상황 속에서 ‘변화한다’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모든 걸 좋아하고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밑의 현실과 흐르는 시간은 결국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감정에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 사랑은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서운함이나 불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까지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기쁜 일과 궂은일, 행복과 불행을 모두 거친 후에야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여전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결혼 후의 희생과 경력 단절로 니콜은 자신이 작아지는 것에 좌절하지만, 소통과 대화는 어긋나고야 만다. 아들 양육과 변호사 선임이라는 냉정한 현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다.
오랜 결혼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는 참 보기 좋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인생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지혜로운 소통법도 궁금하다. 자기를 알고 상대가 바라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솔직하게 그런 마음을 나누는 게 소통의 출발이 아닐까 싶다. 찰리와 니콜 부부에게서 배우는 점이다.
이번 결혼식의 신랑 신부가 평생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응원한다. 이날 보인 그들의 웃음과 눈물이 진정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
* 표지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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